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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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적과학이 군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강화해온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세계 지배적 국가와 지배적 계급에 유리한 결과를 생산하는 쪽으로 편향돼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유산이 남긴 흔적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진즉부터 일부 엘리트 과학·기술 기관이 공공연히 드러내 온 지구공학에 대한 집착에서 찾아볼 수 있다.(318)

 


1992년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는 지구공학을 대기 화학적 변화의 영향과 싸우거나 대항하기 위한 우리 환경에 대해 실시되는 대규모 공학적 조치(large-scale engineering)”라고 정의하였다. 2009년에 나온 영국 왕립학회의 보고서는 지구 온난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기후시스템에 대한 정교한 대규모 개입(intervention)”으로 정의하며, “기본적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 태양의 빛과 열의 일부를 우주로 반사하는 태양 복사 관리로 구분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ETC Group도 유사하게 기후와 관련된 사항을 포함하여, 지구 시스템에 대한 의도적인 대규모 기술적 조작으로 정의했다.(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자료실-번역 일부를 수정해 인용함)

 

지구공학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어떤 문제도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는 낙관론에 젖은 기획자 눈으로 보면, 장밋빛 청사진이다. 인위적 개입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면, 지배적과학이 부추기고 제국 엘리트 과학·기술 기관이 공공연히 일으키려는 토건 정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설혹 전자가 맞다 치더라도 실험·시행 과정에서 정의롭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역사가 증명하듯 그 과학·기술은 언제나 세계 지배적 국가와 지배적 계급에 유리한 결과를 생산하는 쪽으로 편향돼 있기 때문이다. 이 편향은 제국주의 본성이지만 판돈이 줄줄이 걸린 토건 지구공학에서 극대화될 가능성이 크다.

 

ETC Group지구 해적질(Geopiracy: 2010)에서 지구공학을 반대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적시했다.

 

실험될 수 없다. 지구공학을 실험해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기후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지구공학은 대규모 차원에서 실행되어야만 한다. “실험혹은 야외 시험은 실제 세계에서 지구공학을 적용하는 일과 사실상 같다. 왜냐하면 작은 규모의 시험은 기후 영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들과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테고, 즉각 비가역적 상황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불공평하다. OECD 정부와 막강한 기업들(이들은 지난 세기 동안에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생물다양성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거나 무시했으나, 온실가스 배출에 거의 모든 역사적 책임이 있다)가이아를 판돈 삼는 이 도박을 실행하기 위한 예산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좀 더 취약한 국가와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리라고 믿을 어떤 근거도 없다.

 

일방적이다. 모든 지구공학 제안은 수백억 달러의 재정 규모 안에서 실행될 수 있으므로, 부유한 국가와 백만장자에게 지구공학은 실행하기에 상대적으로 값싸고 간단하다. 몇 년 안에 실행 능력은 그 기술을 가진 소수(개인, 기업, 국가) 손에 집중된다. 지구 생태계를 조작하려는 일방적인 시도를 금지하기 위한 다자적 수단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위험하며 예측하기 어렵다. 지구공학적 개입 부작용은 미지수다. 지구공학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쉽사리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기계 실수, 인간 실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지구 기후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 알려진 바 없는 자연 현상···

 

조약을 침해한다. 많은 지구공학 기술은 잠재적으로 군사적 목적을 지니는데, 실행에 옮겨지면 유엔 환경적 조작 조약(UN Environmental Modification Treaty: ENMOD)을 침해한다. 이 조약은 적대적 목적으로 환경을 조작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지구공학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생명 다양성을 보호하기보다는 다른 선택을 하도록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지구공학 연구는 종종 시간을 구매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정부에게 기후 변화로 야기된 피해 보상을 지연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행동을 회피하기 위한 명분만 준다.

 

우리의 기후를 상품화하고 기후 폭리(Climate Profiteering) 우려를 낳는다. 기후 위기를 위한 행성 차원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미 특허 사무소에 특허 신청을 쏟아내고 있다. “plan B”를 정말 실행해야 할 상황일 때,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다면 끔찍한 일이다. 행성을 변화시킨다는 진지한 기술이 결코 상업적 이익을 얻도록 해서는 안 된다.···(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자료실-용어를 포함해 번역 일부를 수정해 인용함)

 

이 이야기는 이미 우리가 살펴본 제국주의 면면을 그대로 재현해주고 있다. 사실 미국이 1960년대에 이 지구공학 이슈를 먼저 던지고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경과 전망을 짐작할 수 있다. 2021년 스웨덴에서 하려 했던 태양 복사 관리 시스템 SCoPEx(하버드대학이 개발) 실험이 전격 중단되었다. 거기에는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 기획자와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대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예상되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열대 몬순기후 요동이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들에 피해가 집중된다. 이 사실을 미국이 모르고 진행했을까? 무슨.

 

변방 무명 의자 깜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서 인용 중심 이야기가 돼버렸다. 사실 의학에 관한 이야기는 첨단적인 데까지 닿으려 매 순간 공을 들이지만 이런 분야는 입 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제국주의 문제를 따라 여기에도 왔으니 다행이다. 어찌 보면 과학보다 공학이 해맑게 중립적일 듯도 하지만 실은 자동으로 강자 손에 붙기 마련이라 더 막무가내 부역 기계다. 이 진실을 정색하고 마주할 때 새삼 소름 돋게 무서운 존재가 바로 공학한 인간이다. 유튜브에 세뇌당해 특권층 부역자 주구 노릇 하면서 자신이 거기 합일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부류다. 저 기계 인간이 기계보다 더 무서운 까닭은 악마적 정신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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