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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평점 :
풍경과 그 속에 거하는 영들이···생생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은 풍경이 자체적으로 의미를 창조할 수 있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스토리텔링: 인용한 이 부연) 수 있다는 증거다. 이는 인간이 장소에 대해 문화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자신이 창조한 의미나 신화를 부여한다는 서사와 완전히 다르다.(307쪽)
어제(4월 9일)는 제6번 국도(정확히는 국도변을 따라 만들어진 자전거도로) 남양주시 구간 일부를 걸은 데 이어, 예봉산(679m)과 예빈산(590m) 경계를 이루며 조안리에서 팔당리로 넘어가는 계곡 길을 걸었다. 20km가량 이 길을 걸으려 내가 경의·중앙선 팔당역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린 풍경은 한강 건너편에 우뚝 솟아 있는 어떤 산이었다.


그 산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한순간이 아니라 화장지를 꺼내 눈물을 여러 번 닦아야 할 만큼 지속되었다. 물론 그 까닭을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미세한 ‘촉’으로는 그제 들은 소식과 본성이 같으면서 형태가 다른 몸 반응, 이를테면 풍경과 그 속에 거하는 영들이···생생하게 느껴지는 증험처럼 다가온다.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생명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내 감각이 울음이기 때문이다. 풍경, 즉 장소 “자체가 지니는 생명력”(308쪽)이 전해질 때 가장 신속·정확한 내 반응은 우는 일일 수밖에 없다. 울기 전까지 나는 그 산을 앞에서 직접 본 적이 없다. 지도에서 본 그 ‘검단산’이리라고 추정했을 뿐. 모를 때 울음만큼 참된 스토리텔링은 없다.
내가 차후 검단산에 관해 어떤 앎을 지니게 된다고 해서 그 앎이 검단산에 대해 문화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거기에···의미나 신화를 부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 울음이 그런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 먼저 자체적으로 의미를 창조할 수 있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주체가 바로 풍경, 그 산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검단산’과 네트워킹할 때 더불어 나눌 이야기들은 제국 서사와 완전히 다르다. 제국 서사는 인간, 아니 서구 인간을 초자연적 존재로 전제하고 그들만이 의미를 창조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서사는 거꾸로 초인간적 자연에‘게’ 그 지위를 돌려준다. 인간 언어가 너무 형편없어서 눈물 한 방울조차 감당하지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