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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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가장 뜨르르한 야수인···칼리반이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희곡 템페스트는 식민주의 우화로 유명하다. 칼리반은 본디 아메리카 인디언 일족을 지칭했을 카니발(Cannibal: 오늘날에는 식인종이라는 의미로 쓰인다-옮긴이) 철자 순서를 뒤바꿔 만든 이름으로 보인다.···

  칼리반은 템페스트등장인물 목록에 야만적이고 신체 불구인 노예로 등재되어 있으며, 그가 지닌 기괴한 외모는 그 희곡에서 거듭 떠오르는 화제다.···

  하지만 칼리반이 지니는 야수성은 본질이 그 외모에 있지 않다.···언어 부족, 즉 언어 능력이 있음에도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 무능력에 있다.(261~262)

 

<6. 제국주의 문학>을 통해 국뽕에 취한 제국 문학을 보면서 맞닥뜨리고 싶지 않지만 결국은 마주해야 할 일을 예감했었다. 올 것이 왔다. 셰익스피어, 너마저?

 

셰익스피어, 사족 달기 자체가 물색없는 짓일 만큼 그야말로 대문호로서 토머스 칼라일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말한 그가 아닌가. 바로 그가 북미대륙 토착민임을 상기시키는 기괴한 등장 인물에게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 그러니까 야수나 자연을 투사했다. 그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사람이 순진한가. 문득 특권층 부역자 서정주가 떠오른다.

 

서정주한테 왜 그랬느냐고 누가 물으니 일제 지배가 백 년은 갈 줄 알았다고 대답했단다. 시에서 보여주는 언어 능력은 어디다 팽개치고 정치에서는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력을 이리도 어이없이 노출했는지. 문학에서 옹골차게 드러나는 천재와 정치에서 허랑하게 드러나는 천치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제법 있다. 저들은 시는 잘 쓰는데 정치적 판단력은 꽝이다라는 말과 시는 잘 쓰는데 장기는 잘 못 둔다라는 말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천치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천치가 아니라 순수 문학으로 위장한 부역 집단이다.

 

내가 서정주를 떠올린 일은 심히 잘못됐다. 서정주는 식민지 포로 부역자지만 셰익스피어는 제국 시민 반역자다. 셰익스피어는 다른 인종에게 야수와 자연을 투사하는 제국주의 강령에 따른 정도를 넘어 출중한 문학성으로 부추기고 확산시켰다. 그가 제국에서 생산해낸 의미는 식민지 사람과 비인간 생물에게는 무의미다.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력은 칼리반 아닌 그 주인 프로스페로, 그러니까 셰익스피어 자신에게 있다. 정치적 올바름을 휘발시키고 보편 철학과 미학에 올라탄 문학은 제노사이드, 아니 옴니사이드 이후 더는 문학일 수 없다.

 

최근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는 소리를 녹음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우리 귀로는 너무 고주파 음이라 들을 수 없다. 우리가 들을 수 없다고 해서 식물에 언어 능력이 없다고 하는 어리석음을 뒤집어 식물 관지에서 보면 인간이 도리어 언어에 무능력한 존재일 수 있다. 칼리반이 만들어내는 의미에 가닿지 못했으면서 거꾸로 뒤집어씌운 주인처럼 말이다.

 

제국이 챙기는 의미란 무엇인가? 본디 모든 존재는 자체가 의미다. 무엇을 더 얹을 이유가 없다. 언어가 부여한 의미는 언어를 물신화한 인도유럽어족이 날조해낸 미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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