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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평점 :
지구 위기가 지닌 명확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유럽식 모델을 따르기 위해 가장 집중적으로 테라포밍된 지역에서 비상한 힘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201~202쪽)
이쯤에서 문득 새삼스러운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지구 위기라는 표현은 타당한가?
제국 인간이 저지른 패악으로 정말 지구가 위기에 처한 상황인지 묻는다. 위기는 제국 인간을 포함한 부역자 인류에게 닥친 일 아닌가 묻는다. 그 인간으로 말미암아서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생태 조건으로 변해 인간이 멸망하고 다른 많은 생명이 억울하게 죽임당한다는 사실로 지구 위기라는 표현을 쓰는 일은 그야말로 주제넘지 않은가 묻는다. 인류를 포함한 여러 생명이 사라진다고 해서 지구 생태계 전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면 어떤 모습으로든 지구 생태계는 태양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될 텐데 지구 위기라는 표현은 인간 위기를 투사한 말하자면 신이 자기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는 서사와 같은 전도‘질’ 아닌가 묻는다.
아미타브 고시가 앞서 점잖게 말한 한 대목을 떠올리면 답이 나온다.
우리 시대 기후변화는 다름 아니라 400년에 걸친 테라포밍···이라는 도전에 지구가 응전하는 행동이다.(120쪽)
‘솔·까·말’로 번역하면, “지금 우리가 지구 위기라고 명명한 문제는 지구가 위기에 처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구가 인간을 응징하는 문제, 그러니까 인간이 저지른 악행에 지구가 벌을 주는 문제다.” 인간이 자복하고 그나마 선처를 빌 수 있는 길은 유럽식 모델을 따르기 위해 가장 집중적으로 테라포밍된 지역을 자연에 ‘깃들어’ 사는 수준으로 디-테라포밍하는 일뿐이다. 6천 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님을 모른다면 발끈할 주제조차 되지 못한다.
서울 와 첫 10년을 살았던 산동네에서 내려다본 도심 빌딩 ‘숲’은 어린 내게 가히 그랑 로망이었다. 60년 가까이 지난 그 서울은 그때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skyscraper ‘숲’이지만 늙은 내게 더 이상 로망이 아니다. 내가 노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정신으로 내려다본 서울은 그대로 저주다. 기후 재앙을 빨아들이는 악마 목구멍이다. 어제보다 대기 상태가 좋다는데 스마트폰에 뜬 그림이 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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