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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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안보 기관이 기후변화에 대해 내놓은 보고서에 나타나는 일관된 한 가지 공통점은 서구세계가 지구 위기로 말미암은 비극적 영향에서 보호받는다고 가정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정은 얼핏 보면 그럴듯하고 심지어 설득력마저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이와 같은 서사가 완전히 거꾸로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그 가운데 가장 최근 예가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그 팬데믹이 거쳐온 경로는 지구 위기 역시 직관에 반하는 놀라운 방식으로 펼쳐지리라는 암시를 던져준다. 예컨대 베트남 1인당 소득은 유럽 여러 나라 소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하지만 중국과 국경을 길게 접하고 있음에도 코로나19 발생률이 현저하게 낮았다.···

  반면 고전한 나라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그리고 물론 영국과 미국 같은 부국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런 결과가 드러내는 불행한 측면 가운데 하나는 서구 엘리트가 소중히 여기는 신념, 곧 그들 국가가 지닌 부, 인프라, 그리고 줄곧 칭찬받아온 의료체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이 몰고 올 비극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리라는 신념 탓이었다는 사실이다. 근본적 우월성에 대한 맹신과 강대국 허세가 맞물리면서 서구는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이 취한 방법을 선뜻 채택하지 못하고 최악에 이르렀다.(187~188)


 

인간이 타락의 임계점을 넘어섰음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특정 공간이 몇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형교회 건물이다. 그중에서도 과연 저게 예배당인가를 의심케 하는 강남의 모 교회 건물은 참으로 화려해서 참으로 기괴한 느낌을 준다. 이 화려해서 기괴한 교회 안에서 배양되는 신앙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교회 신도 한 사람과의 인상적인 조우를 기억한다.

 

부티와 교양미를 풍기는 노인이 들어섰다. 나는 정중한 인사로 맞았다. 그가 지적하는 단 하나의 증상은 불면이었다. 여러 방식으로 진단해보니 원인 질환이 따로 존재했다. 다름 아닌 우울장애였다. 내가 설명을 시작하자 다 듣지도 않고 그는 말을 끊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우울장애에 걸리지 않아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내 귀에는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아요.’와 똑같은 말로 들렸다. 기복으로 굳어진 한국 개신교가 그려준 부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의 우울장애를 치료해왔다고 했더니 그는 대뜸 그들의 신앙은 잘못된 것이라 했다. 나도 더는 예의를 지킬 마음이 없었다.

 

제 진단은 어르신 신앙으로 부정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인정하고 우울장애 치료부터 받으시지 않으면 저는 불면증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는 크게 화를 내며 일어섰다. 나도 큰 소리로 외쳤다.

 

간호사님, 환자분 나가십니다!”

 


내가 쓴 숙의 의학 소설 나니까 망정이다에 나오는 이야기 <부적>이다. 서구세계에서는 , 인프라, 그리고 줄곧 칭찬받아온 의료체계가 부적이었던 셈이다. 무릇 부적은 부도수표 같은 물건이다. 속으면서도 부적 마니아는 부적 신앙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그래서 부적이 부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비극 한가운데 있을 무렵, 프랑스 외교 정책 전문가 한 사람이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자기 나라를 한국과 비교하는 일은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지금도 그 사람은 그 감정을 견지하고 있으리라. 물론 부적 부작용이다. 진정 과학·의학도 그 앞에서는 쪽을 못 쓴다.

 

근본적 우월성에 대한 맹신과 강대국 허세, 그 본질은 무엇일까? 맹신과 허세는 그들 국가가 지닌 부, 인프라, 그리고 줄곧 칭찬받아온 의료체계에 근거했을 텐데 어찌 이며 일 수 있을까? 근거 자체가 그렇다기보다, 최고·유일·전부로 인식한 행태가 이며 . 실로 맹허다~

 

서구가 빠져 허우적거리는 늪은 단순하다: 동어반복인 진리 체계 안에서 배 두드리기. 자기 바깥 드넓은 진리 세계를 정복과 절멸 대상으로 삼았으므로 스스로 목을 죄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간이 없다. 한 찰나 바삐 자기 자신을 인류학대상으로 삼아야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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