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대성이 경제성장과 화석연료 간 직접적 추이 관계를 확립했다는 사실은 대체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같은 방정식이 전쟁 수행과 화석연료 간 관계에도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한 나라가 군사력을 발휘하는 능력은 그 나라 탄소발자국 규모와 직접적 상관성을 띤다는 사실인데, 19세기 이후 줄곧 그랬다.···

  오늘날 미 국방성은 단일 기관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이다.···예를 들면 이라크 전쟁 기간에 미군은 중동 군사 작전 하나를 위해서만 연간 13억 갤런가량 석유를 소비했다. 이는 인구 18천만 명 방글라데시가 연간 소비하는 양을 능가하는 수치다. 이런 활동은 다른 생태 비용을 낳기도 한다. 군사 장비를 가동하기 위해 희석제, 용제, 살충제 같은 다양한 유독성 화학물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 국방성은 국내 상위 5대 화학회사를 다 합친 양보다 더 많은 독성 화학물질(연간 50만 톤)을 쏟아내고 있다.···

  군사화가 단일 요소로 생태계를 가장 크게 파괴하는 인간 활동이라 지목되어 왔음에도 이에 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분야 선도적인 학자 3인이 군국주의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사회과학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다.(173~176)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어느 정도가 군사적 에너지 사용에서 비롯할까? 모른다. 기후변화를 다룬 문헌 수가 기묘할 정도로 적은, 아마도 유일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국제 기후 협약에서도 군사 활동 관련 배출량을 다룬 적이 전혀 없다. 미국이 1997년 교토의정서 협상에서 배제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205)

 

60년 전으로 돌아가 아득한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베트남 파병 내막이 뭔지 1도 알 길 없는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서 <백마부대> 노래를 배운다. “달려간다, 백마는, 월남 땅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들!” 박정희 쿠데타와 더불어 유년기를 살아낸 세대는 이렇게 군대에 대해 초월적 권위를 부여하도록 세뇌당했다. 물론 그 앞 세대는 참혹한 내전 속에서, 또 일제 군국주의 통치 아래 중첩적으로 이런 강제를 겪었다: 군대는 진리다. 질문하지 마라.

 

고등학교·대학교에는 교련이 교과목으로 들어 있었다. 예비역·현역 장교들이 교사 또는 교관으로 근무했다. 대학 때 학도호국단을 부활시키면서 학교 분위기는 더욱 군사화되었다. 교관이 출석 확인 시 장발 단속해서 이발하고 오지 않으면 결석으로 처리할 정도였다. 마침내 입대하면 온몸으로 느낀다: 군대는 진리다. 질문하지 마라. 민간인으로 돌아와도 예비군 훈련, 민방위 훈련···병영 체제에서 겨우 놓여나 본들, 때는 이미 늦었다. 군대 마귀가 착 똬리 틀었다.

 

하물며 지구 전체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미군임에랴. 차마 누가 진실을 들먹이며 감히 누가 질문하겠는가. 그 문이 그렇게 닫혀 있다면, 지금 우리가 떠드는 기후 문제며 지구 위기 이야기는 핵심을 젖혀놓고 변죽만 울리는 꽹과리다. 실제 상황은 훨씬 더 엄중하다. 게다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갈리는 진실을 묻어버린 채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미군이 끝내 오리발 내밀어 대파국 오면 저들은 들림받고 우리는 버림받은 별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군대, 특히 미국 군대는 이미 군대가 아니다. 권력과 금력, 그 접점을 장악한 초월적 존재다. 전지전능이란 말을 미군에게 쓰지 않는다면 지구상에 그 누구에게도 쓸 수 없다. 정말 대파국이 온다면야 가이아야말로 전지전능한 존재일 터이다. 가이아가 전지전능을 펼치게 될 때 인간은 사라질 확률이 높다. 그런 상황을 충분히 예기하면서도 알량한 초월성을 즐길 수밖에 없는 이성이 제국 군대가 지닌 한계일 경우에라도 우리는 진리 앞이라며 묵묵히 순복해야 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