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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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는···국제적 권력 위계와 뒤엉킴으로써 경제적이지도 않고 목록화할 수도 없는 기득권을 만들어냈다. 이는 석유가 지닌 또 다른 물질성 때문에 가능했다. 배나 송유관을 통해 채굴 지점에서 다른 장소로 운송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 말이다. 여기서···제국주의 전쟁 역사로 곧장 이어지는 지정학적 역학이 생겨난다.(149)

 

20세기에 벌어진 양차 대전에서 승리는 특정 인간 집단뿐 아니라 화석연료 에너지가 일구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석유 부족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추축국 석유 부족이 훨씬 더 큰 패배 요인으로 작용했다.···

  요컨대 20세기 전반에 걸쳐 석유에 대한 접근은 세계 지정학적 전략에서 핵심으로 떠올랐다. 강대국에 석유 흐름을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힘이 있다는 말은 경쟁국 급소를 때릴 수 있다는 의미다. 20세기 상반기 석유 흐름을 좌우한 국가는 영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바통은···미국으로 넘어갔다. 세계 에너지 흐름을 보증하는 직무는 현재 미국이 구사하는 전략적 세계 지배와 그 패권적 지위에 결정적이다.(151~152)

 

석유가 불균일하게 분배되며 해양을 거쳐 운송돼야 한다는 사실은 해양 choke point 몇 개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그 흐름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공교롭게도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은 모두 인도양에 위치한다.···

  ···인도양으로 창출된 지정학적 연속성은 시간이 흘러도 놀랍도록 일관되게 남아 있었다.

  오늘날에는 그 어느 곳도 직접 통제하지 않는다.···미국이···‘군사기지 제국(Empire of Bases: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셀 수없이 많은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제국이라는 뜻-옮긴이)’으로서 총괄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155~157)

  

  실제로 지구 종말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은 서구가 점한 지정학적 절대우위 종말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시시각각 커지면서 지구 위기에 더 큰 불확실성을 던져주고 있다.(171)

 

사실상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초거대 제국 USA가 거느린 해외 군사기지는 80개국에 750개다. 거기에 17만여 명 병력이 투입돼 있다. 이를 통해 총괄 감시하고 있는 choke point는 다만 석유 흐름이 형성하는 물류 거점이 아니다. 에너지로써 제국이 구가하는 전략적 세계 지배와 그 패권적 지위에 결정적인 지정학적 거점으로서 블랙 네트워킹을 이어주는 결절점이다.

 

이 블랙 네트워킹은 여전히 강력하다. USA가 저무는 제국이라는 담론이 부단히 나돌고 실제로 그런 증후가 나타나고 있지만, 일극 집중 세계체제가 무너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전방위·전천후 긴박성을 띤 지구 위기가 이 문제를 어떻게 예측불허 방향으로 끌고 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나 같은 소시민에게는 아뜩한 문제다. 관심사를 조금 좁혀 본다.

 

가장 많은 미군기지가 있는 나라는 일본(120), 독일(119), 한국(73)이다. 각각 53,700, 33,900, 26,400명이 주둔하고 있다(2021년 해외자료). 63%에 달하는 기지, 66%에 달하는 군인이 세 나라에 몰려있다. 게다가 세계 최대 미군기지인 Camp Humphreys가 한국에 있다. 2차 세계대전 주축국인 독일과 일본이야 그렇다 치고, 한국은 대체 왜 이 지정학 한가운데 놓여 있는가?

 

일제 식민지였으므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카스라-태프트 밀약으로 팔아먹고, 해방을 분단으로 결딴내고, 남한에 점령군으로 들어와 3년 동안 군정을 실시하면서 식민지 유제를 대한민국 국가체제 근간으로 굳히고, 뒤이어 내전까지 유발한 역사에 따르면, 미국이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략을 동원했다고 판단할 근거는 흘러넘친다.

 

미군정, 73개로까지 늘어난 미군기지, 실질적 미국 통치가 한국 사회에 무엇이었는지, 무엇인지, 무엇일지 자칭 진보 또는 좌파 지식인들만이라도 정확히 알고 있을까? 자신들이 교묘한 부역자라는 진실에 결곡히 승복할까? 구태여 답을 구하려는 질문이 아니다. 딱 오늘 우리 정치 현실만 보더라도 통렬한 참회가 요구되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차마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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