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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평점 :
19세기에 화석연료가 다른 에너지원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까닭은 권력구조를 강화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19세기 초엽 석탄-화력 제분소가 물로 움직이는 경쟁자를 서서히 몰아내기 시작한 이유는 석탄이 더 저렴하고 한층 효율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물을 동력으로 삼는 제분소도 석탄-화력 제분소만큼이나 생산적이었고, 비용은 그보다 훨씬 낮았다. 증기로 움직이는 기계들이 득세한 까닭은 기술적 이유에서라기보다 사회적 이유에서였다. 석탄-화력 제분소는 그 소유주에게 인구 밀도가 높고 값싼 노동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시에 그 공장을 세울 수 있게 해주었다.···
석유가 지닌 물질적 특성은 권력구조를 강화하는 능력에서 석탄을 월등히 능가하도록 만들어준다. 지배계급이 보기에 석탄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을 안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석탄은 대규모 광부가 캐내야 하는데, 이는 그들이 급진화하기 맞춤한 조건에서 노동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광부들이 세계 노동운동 선봉이었다.···석탄과 달리 석유 채굴과 운송은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석유는 자본이 지역에 얽매이지 않은 채 세계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도록 보장해주었다.
요컨대 화석연료는 지배계급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간사와 얽혀왔다. 이런 역학을 완벽하게 드러내 주는 말이 바로 ‘power’라는 영어 표현이다. “자연적 힘”으로서 에너지 개념과 “인간관계 속에서 권력·지배구조”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이와 달리 태양, 공기, 그리고 물 같은 대안적 근원에서 비롯하는 에너지는 커다란 해방적 잠재력으로 충만하다. 원리상 모든 가정, 농장, 공장은 에너지를 자체 생산함으로써 권력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또한 더없이 중요한 국제적 차원도 지닌다. 일정 정도 수준에 이르면 세계질서를 사실상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146~149쪽)
특권층 부역자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직후 갑자기 전기·가스요금이 폭등해서 난리가 났다. 특권층 부역 언론이 가짜 뉴스 만드느라 혈안이 돼 있을 때 <<시사인>>은 조용히 그 원인을 분석했다. 기사를 읽는 내내 나는 깊은 무력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미국이 주도하는 에너지 세계체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런 협잡과 소용돌이는 계속될 텐데 현실적으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는 제국주의 경험이 일으킨 자본주의가 도시화·산업화를 휘몰고 올 때 이중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전해지는 동안 에너지 세계체제는 더욱 강고해졌고, 그만큼 지구 위기는 대파국 카이로스로 육박하고 있다. 자연적 힘으로서 에너지를 내는 화석연료가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기후 위기가 가파르게 증강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속 권력·지배구조로서 ‘석유 패권’이 지정학적 불균형을 극단화하고 있어서 인류 공동체 위기 또한 맹렬하게 고조되는 상황이다.
물론 답은 간단명료하게 이미 나와 있다. 커다란 해방적 잠재력으로 충만한 태양, 공기, 물 같은 대안적 근원에서 비롯하는 에너지를 쓰면 된다. 문제는 그러면 세계질서가 혁명적으로 변화한다는 데 있다. 이 변화를 USA가 바라지 않으므로 그 답은 답이 아니다. USA가 꾸는 꿈은 지구를 최종 목적지로 삼지 않는다. USA가 사랑하는 사람은 ‘인류’인 인간이 아니다. USA 눈에 지구는 자원 생산하는 기계고, 그 지구에서 인간으로서 평등하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평범한 ‘인류’는 짐승이다.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온 영혼이 녹아내릴 때 ‘우리’는 홀연히 빙의된다. 기계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짐승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부역자 각성이 통렬히 일어나는 찰나 ‘우리’는 마지막 샤먼이 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집단 각성이 일어나는 꿈이 황당한가? 그러면 과학이라는 이름 걸고 휴거를 꿈꾸는 서구 제국주의 프로젝트는 진리인가? 저들이 이토록 무모하게 에너지 제국주의를 밀어붙이는 광기 뒤에 도사린 만고불변 진리는 “나는 나다.”다. 거기에 변화는 불가하다. 에너지는 거기에 충성한다. ‘우리’ 에너지는 다르다. 변화하는 주체다. 변화는 다만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뜻 아니다. 변화는 끊임없이 전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행길 주도하는 에너지를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