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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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미대륙 토착민은 지구를 풍요롭다고 여겼으므로, 나무를 자르고 영구 정착촌을 건설하고 울타리 두른 인클로저를 짓는 행위를 통해 정착민이 땅과 관계 맺는 방식이 자신들 생활 방식을 생태적으로 방어할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착민이 생태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자신들 먹이사슬을 교란하기 시작하고야 비로소 저들을 항구적 불균형을 일으키는 원흉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다양한 비인간이 이런 불균형 상태를 빚어내는 데 톡톡히 한몫했다. 그중 가장 파괴적인 존재가 정착민 소유 반려 종이었다. 울타리와 목초지가 필요하고, 때로 길을 잃은 채 숲속을 떠돌아다니곤 하는 소와 돼지들 말이다. 이 가축이 생태계에 끼친 해악은 실로 광범위했다. 그들을 침식 효과를 악화시켰고 토종 풀을 사라지게 만든 데다 토종 동물군이 의존하는 자원을 먹어 치웠다. 미기후 변화를 촉발했을 뿐 아니라 숲을 짓밟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식민지화 결과로 토착민이 마주한 문제를 한층 더 악화시키는 데 결정적 요소였다.

  영국 출신 정착민에게 가축은 유럽 모델에 따라 토지를 개간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초기 북미대륙 생존 조건은 유럽처럼 가축을 돌볼 수 없게 만들었다. 불가피하게 가축을 방목했는데 이는 토착민에게 치명적 결과를 안겨주었다. 소와 돼지가 온 천지를 쏘다니면서 토착민 옥수수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경작지를 뭉개버렸다. 가축이 정착민과 토착민 간에 빚어진 반복적 갈등 원인으로 떠올랐다고 해서 놀랄 일은 전혀 없었다.(94~95)

 

2. 질병, 가축, 토지개간이 미치는 장기적 영향력은 소리 없이, 흔적 없이 드러났다. 그 영향력은 말하자면 비인간 존재와 비인간 물리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괴가 이루어지는 수동 갈등 전선이었다. 이 전선에서 핵심 요소는 부작위였다. 직접적인 표적이 인간 신체가 아니라 그를 지탱해주는 생명 네트워크 주요소라는 점에서는 간접적이지만 이 갈등은 능동적 생태 개입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평원에서 물소 떼를 몰살하는 전략이었다.···1865~1883년 미국 군인과 사냥꾼들은 물경 1,000~1,500만 마리 물소를 살해했다. 남은 물소는 수백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토착민 문제는 물소 문제이기도 했으며, 양자는 삶에서도 죽음에서도 깊이 연관돼 있었으므로 비슷한 절멸 과정에 처했다. 한쪽을 파괴하기 위해 다른 한쪽을 파괴했다.···(98)

 

3. 대평원 남부에 남아 있던 토착민 물질적 토대는 테라포밍 과정, 특히 강 흐르는 방향을 바꾸고 댐을 건설함으로써 끊임없이 파괴됐다.···댐 건설은 역사적으로 토착민 공동체에 가장 파괴적인 치명타를 날렸다. 댐에서 비롯한 홍수는 전체 주민 삶터를 빼앗고 어장을 파괴함으로써 기아와 빈곤을 몰고 왔다.···미국이 어떤 다른 종족에게 저지른 짓 가운데 단일 요소로서 가장 파괴적인 행위가 틀림없다.(99~100)

 

4. 숱한 다른 개입 조치가 토착민을 그들이 살던 터전에서 내쫓았으며, 합법적 추방을 위한 군사 수단과 행동을 통해 봉쇄지대로 그들을 밀어냈다. 그런 지대조차 결코 안전하지 못했다. 더 많은 개입과 배제 행위가 거듭해서 삶터를 옮기도록 강제하곤 했다.···침략은 사건이 아니라 구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재정착 장소 가운데 일부는···크게 파괴된 환경에 처하도록 강요받는 희생 지대로 떠올랐다. 가령 1890년 운디드니에서 대학살이 일어난 50년 뒤, 오세티 사코윈 부족은 다시 한번 미군과 마주쳤다. 연방정부가 보호구역 342천 에이커를 몰수해 공군 폭격장으로 바꿔 놓았을 때다. 이제 이 땅은 군수품 쓰레기가 온통 널려 있어 불모지가 됐다.

  ···317개 보호구역은 독성 폐기물에서 개벌(皆伐/clear-cutting: 나무를 수종과 무관하게 모조리 베어버리는 방식-옮긴이)에 이르는 생태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들 희생 지대 상당 부분이 다양한 지구 위기에 유달리 큰 영향을 받아온 일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20207월 코로나19가 한창 맹위를 떨칠 때 산불에 휩싸인 나바호 네이션이 대표적인 예다.(100~101)

 

제국주의가 이렇게 치밀하고도 집요하게 토착민과 생태계 전반을 공격한 사건, 아니 구조를 목격한 뒤에도 음모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일이 지성인이 지켜야 할 도리라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특권층 부역자다. 음모는 악의를 지닌 악인 한 사람 또는 집단이 사전에 꾸미는 협잡 따위가 아니다. 음모는 블랙 네트워킹이다. 네트워킹이어서 네트워킹을 모르는 패거리 인간들이 알리바이를 대기 쉬울 따름이다. 특히 정치, 모든 정치는 음모다. 이 진실에 눈감으면 제국과 부역 지배층이 쳐 놓은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한민국 현실이 꼭 똑 그렇다. 더는 차마 사족 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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