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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평점 :
이름 바꾸기(renaming)는 식민주의자들이 자기가 정복한 풍경 옛 의미를 지우는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였다.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들은 피쿼트족을 말살한 직후,···그들을 떠오르게 하는 바를 지상에서 차단하는 작업에 전념했다. 이를 위해···생존자들이 스스로를 피쿼트라고 부르는 행위를 금지했으며, 피쿼트강은 템스강으로 피쿼트 마을은 뉴런던으로 바꿨다. 뉴런던과 관련해 저들은 “친애하는 우리 조국 주요 도시를 추억하기 위해서”라고 천명했다.(71쪽)
항일무장투쟁 전사였던 증조부 덕분에(!) 평생 일제 경찰에게 감시당하며 살았던 조부는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버텼다. 가족을 볼모 잡고 하는 협박을 견디지 못해 막판에 신농(神農)씨라 하고 이름은 그대로 두었다. 좌도 선맥 영향 아래 있었던 조부는 신농을 동이족이며, 더군다나 강(姜)씨 시조로 알고 있었다. 조부는 창씨를 한 적 없었고, 일제는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조모가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나는 그저 통쾌하게 여기고 깔깔댔다.
일제가 이름을 바꾸려고 혈안이 되어 날뛴 대상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이다. 현재의 인사동 지역에는 조선 초기에 한성부 중부 관인방(寬仁坊)과 견평방(堅平坊)이 있었고(방(坊)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도의 행정구역 명칭의 하나로 성안의 일정한 구획을 말함), 1894년 갑오개혁 당시에 이루어진 행정개혁 때는 대사동(大寺洞), 원동(園洞), 승동(承洞), 이문동(李門洞), 향정동(香井洞), 수전동(水典洞) 등이 있었다. 인사동이라는 이름은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관인방과 대사동에서 가운데 글자 인(仁)과 사(寺)를 각각 따서 붙였다. 대사동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고려시대에는 흥복사, 조선시대에는 원각사라는 큰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결과적으로 인사동은 본디 지니고 있었던 역사와 풍경이 삭제되고 발음만 존재하는 이름이 되었다. 바로 이런 짓이 제국주의가 애용한 “풍경 옛 의미를 지우는 중요한 도구”다. 그 도구 효과는 100여 년 뒤 한 아이가 이렇게 묻는 일로 나타났다.
“인사동은 인사 잘하는 동네라는 뜻인가요?”
그 형 이상득이 공공연히 ‘골수까지 친일이며 친미’라고 추켜세웠던 이명박이 대통령 짓 할 때 전국 지명을 도로명으로 바꾸는 거대 토건 범죄를 일으켰다. 내가 범죄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 짓이 일제가 저지른 국토 창씨개명 시즌2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범죄 과정에 엄청난 돈이 개입했으리라 본다. 사람이든 땅이든 이름 짓고 바꾸는 일은 편의 너머 생사 문제다.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람·땅·풍경 이름에 칼을 들이대는 행위는 또 다른 제노사이드(onomacide)다.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다.”라고 말했다. 해방 운동은 자기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는 일에서 시작한다. 반제 운동은 살해된 이름을 되찾아주는 일에서 시작한다. 반제 운동은 숨긴 부역자 특권층 이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에서 시작한다. 아니. 그 전에 제국이 어떻게 사람과 땅과 풍경 이름을 살해했는지 결결이 겹겹이 드러내야 한다. 이 일조차 하지 않는 국가에서 진정한 공동체성을 찾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