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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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에서 부상하던···형이상학에서는 질료를 야만적이고 어리석은것으로 간주하고, 따라서 오직 이윤과 물질적 부만을 목적으로 삼는 가장 파괴적인 기술을 써서정복해야 마땅하다고 보았다.···

  이는 지구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비활성 입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로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었다. 심지어 유럽에서도 이 같은 기계론적 세계관은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오직 당시 두 가지 거대한 유럽 기획-·남미 대륙 정복과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엘리트 사이에서만 그랬다.···나중에 동시대 인물인 데카르트, 맨더빌, 베이컨, 보일이 정립했다고 여겨지는 기계론 철학 발판을 다진 것은 바로 원주민과 바로 그 원주민이 살아가는 풍경에 가한 폭력이었다.

  무엇보다 교육받은 유럽 상류층 남성을···스스로 그들이 바라보는 모든 존재의 정복자로 여기도록 이끈 힘은 북·남미 대륙 예속과 인구 재배치였다.···

  ···마녀사냥에서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악마 숭배자로 인식한 데서 비롯한 비유를 동원함으로써 대개 가난한 유럽 여성 다수를 문자 그대로 악마화했다.···

  유럽 마녀사냥과 북·남미 대륙 제노사이드 사이 시간 겹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 시기 유럽 집단 이성은 인간 피와 살을 이용하는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아메리카 원주민은 물론 유대인과 기독교 이단에 포위당했다고 인식했다. 이런 식으로 어우러진 물리적·지적 폭력은 하나같이 비신성·무생물성 지구에서 자원을 착취하는 데 기반을 둔 새로운 경제 출현에 필요한 과정이었다.(54~56)

 

아미타브 고시는 여기서 천재들이 먼저 기계론 철학 또는 기계론적 세계관 이론을 창안하고 그에 따른 실천으로 권력이 성전을 수행해 오늘날 지정학을 구축하지 않았음에 주목한다. 통속한 관념은 대개 이론이 먼저 있고 실천이 뒤따른다고 믿는다. 이는 서구 제도 교육이 주입한 결과다. 더러운 탐욕과 잔혹한 범행을 은폐하려고 이성을 동원해 사후논리화한 또 다른 탐욕이며 범죄다. 먼저 죽여 놓고 나중에 본디 생명이 아니었다고 날조한다. 가해자면서 도리어 피해자라고 투사한다. 심지어 유럽 내부 마녀사냥조차 외부에 가한 폭력을 은유함으로써 정당화한다. 이 전방위·전천후 도착행위는 무거운 정신병 상태임과 동시에 무서운 죄악 상태다. 이 두 겹 악마를 끊임없이 낳는 깊은 자궁이 바로 서구 기독교다. 기독교는 서구 제국주의 논리 구성에서 언제나 대전제로 작용함으로써 끝내 동어반복이 되게 하는 영원 형식이다.

 

이 영원 형식인 기독교는 제국주의가 불멸로 일어나게 하는 현현 본성이다. 그 본성은 창조와 심판, 구원과 재창조라는 시간 괄호에 공간을 가두어 결국 무의미에 떨어지게 만든다. 기독교 눈에 기껏해야 비활성 자원 창고에 지나지 않는 공간 자연을 특정하여 신성한 구심점으로 삼는 반다인, ·남미 원주민은 단지 미개한 정도를 넘어 가장 파괴적인 기술로써 박멸해야 할 범죄 집단이었다. 그 박멸 현장에서 경험한 피비린내 나는 성취, 정의, 신성 의식을 다듬어 철학이니 사상이니 하는 이름으로 내놓은 우아한 찌꺼기들을 오늘날 우리가 기품 있는 업적으로 삼아 기린다. 제국 시민이야 그러려니 한다. 과거 찐 식민지였으며 현재 더 교묘한 식민지인 나라 또는 부족 시민은 왜 그러나. 제국 천재들이 지은 책을 읽기 전에 자기 조상과 대지와 강과 초목, 그 신성한 풍경이 겪은 아픔과 슬픔부터 읽어야 하지 않나.

 

지난 3년 동안 식물, 지의, , , 세균, 바이러스 공부에 극진했던 까닭을 이제야 알겠다. 숲으로, 또 숲으로 향했던 까닭도 이제야 알겠다. 인간인 내가, 내 머리로 그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인간 몸과 함께 사는 미세 생명들과 우리 공생체와 더 넓게 공생하는 바깥 생명들, 그리고 비생명들이 더불어 네트워킹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임이 틀림없다. 여기에 와 닿았으니 이제 또 여기서 제국주의 범주가 포괄하는 엄청난 이야기를 결결이 겹겹이 들어야겠다. 내 지식과 사상이 들어왔던 길들을 일일이 톺아봐야겠다. 거기 똬리 튼 은폐, 왜곡, 조작을 물구나무서기로 바라봐야겠다. 아니다. 실은 이제껏 물구나무서기로 봐왔으니 제대로 서서 봐야겠다. 살해당한 존재가 발하는 아프고 슬픈 소리를 제국이 저지른 범죄 현장에서 들어야겠다, 숲에서도 물에서도 거리에서도 심지어 꿈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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