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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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현대는 인류를 지구에서 해방하고 인공 제품이 자연 제품보다 우위에 있는 새로운 진보 시대로 인류를 이끌었다고들 말한다. 난감하게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날 300년 전보다 (아니 500년 전보다, 심지어 5000년 전보다) 식물 물질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비단 식량만이 아니다. 현대 인류 대부분은 매장된 탄소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해 살아간다. 석탄·석유·천연가스가 화석화한 식물 물질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재화 유통과 관련해 말하면 화석연료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재화 범주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다···. “에너지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이다.···10대 세계적 기업 가운데 8개가 에너지 기업이다.”···

 

  인간이 득의만면하게 지구에 대한 물질적 의존에서 벗어났다는 근대성 신화 만들기를 잠시 접어두고, 지구 산물에 대한 인간 예속이 점차 커지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반다 제도 이야기가 더는 현재 우리 곤경과 달라 보이지 않으리라. 도리어 그 둘의 연속성이 너무나 긴박하고 강력해서 반다 제도 운명은 우리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오늘을 위한 본보기로 읽힐 여지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31~32)

 

1장 끄트머리를 장식한 이 내용은 책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미리 암시한 부분이라 할 만하다. 400여 년 전 인도네시아 깊숙이 자리한 작은 제도 반다 특산 식물인 육두구를 빼앗기 위해 네덜란드가 인간과 비인간 생태 주체를 몰살한 상황이 오늘날 식물 물질인 화석연료 주도권을 쥔 USA가 전 세계 인간과 비인간 생태 주체를 몰아붙이는 상황이 너무나 긴박하고 강력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기에 말이다.

 

책 부제가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임을 감안할 때, 주된 흐름이 식물(을 포함한 비인간 생태 주체들)에 관해 상세하게 논하는 쪽으로 가지 않겠지만, 독자는 저자를 넘어 거기까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육두구든 화석화한 식물이든 식물 생명은 곰팡이가 구축한 공생 네트워킹을 지구생태계 전체로 확산·번성시킨 주인공이다. 이 주인공이 지닌 생명 본성이야말로 인류에게 마지막 솔루션일 테니 거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식물로 이끌렸던 곡절이 바로 여기 있다.

  식물은 죽은 물질 자원이 아니다. 식물이 발하는 고요는 적요가 아니다. 식물은 평등하게 분권화된 지구 네트워킹이 창발하는 공생 구조며 장소다: 제국의 반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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