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년 동안 사실상 절독 절필한 가장 큰 이유는 타인, 특히 제국 지식인이 쓴 글을 더 이상 소비하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거기에 주해를 붙이기 싫었다는 데 있다. 지난 60여 년 동안 내 삶을 이끈 앎과 힘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뼈아프게 성찰한 결과였다. 앞으로 절대 제국 서적을 읽지 않겠다거나, 주해 리뷰 따위를 하지 않겠다는 결벽증으로 미끄러지지 않았음은 물론이지만, 저들을 대하는 내 눈빛이 사납게 깊어졌음 또한 물론이다. 제국 유학파 국내 지식인들이 그려내는 부역 풍경에 대해서는 심지어 이슥한 자비까지 베풀 용의가 있다. 왜냐하면 저들은 모르고 나는 아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생이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던 어느 날 숲은 그 진실을 무섭고 아프게 알려주었다. 느닷없이 돋을새김 된 각성 앞에, 그리고 홀연히 그가 나타났다: 아미타브 고시. 그가 내게 건넨 이야기는 육두구의 저주였다. 긴 세월 동안 개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제국주의 전경을 이 책은 도도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탁월함이 단순히 자연인 역량에서 나왔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그는 제국주의 원조인 영국이 오랫동안 지배했던 인디아 콜카타 출신으로 이집트를 거쳐 영국, 마침내 현대 제국주의 일극 본진인 미국까지 흘러가며 살아온 경계인,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부역자기 때문이다.


ulfandersen.photoshelter.com


Basso Cannarsa/Opale

 

실제로 그가 프리모 레비와 본질이 같은 인식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 눈동자를 본 순간 프리모 레비가 떠올랐다. 같은 타래 인간임을 직감했다. 결이야 서로 다를 수밖에 없지만, 제국 변방에서 최대한 증언했고 끝내 증언을 멈추지 못할 발걸음으로 생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서로 같다. 부역자가 아니라면 이들은 결코 증언할 수 없다. 증언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스스로 부역자라는 진실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반역자 코스프레를 하는 능동 적극 부역자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수동 소극 부역자까지 영이 결딴난 자들은 증언 자체를 알지 못한다. 증언하는 부역자는 그러므로 나나보조다.

 

나나보조는 (포타와토미족이 거북섬이라 부르는) 북미 대륙 토착민 아니시나베족 전승에 등장하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마니도(영적 존재)trickster. 창조·균형·겸손과 파괴·불균형·오만을 구현하는 쌍둥이 중에서 전자를 향도하는 존재다. 제국주의 치하 식민지 문맥에서 보면 각성한 부역자다. 하필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를 나나보조에 의탁하는 까닭은 영·미 제국 정착형 식민주의가 가장 참혹하게 도륙한 토착민이 빚어낸 절묘한 불순물캐릭터를 향해 오마주로 바치고 싶어서다. 일제와 미제에 부역한 내게는 차마 이름도 없다. 이제부터 그려내는 나나보조 지라시 서사 전체를 내 이름에 갈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