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룡 계곡 사건은 천하 죽비로 나를 내려쳤다: ! ! !

 

여태까지 공공연하게 순물질의인 행세를 하며 살아왔다. 항일무장투쟁 전사였던 증조부, 매판 부역 세력에 맞서는 행진을 따라갔던 나, 그 두 단순화한 이미지 서사로 현실 모순을 은폐한 채 매판 부역 지배층에 퍼부은 날카로운 시선 덕 보며 살아왔다. 내가 저들에게 퍼부은 시선 밑천은 어디서 왔는가? 많은 부분이 반역자와 저명 부역자에게서 왔다. 그 발자국을 따라 여기까지 왔으니 돌연 사라지고 말 수밖에 없다: 자가당착. 이제 냉정 정확한 나나보조(Nanabozho(북미 선주민 신화에 나오는 trickster))길을 가야 한다. 불현듯 프리모 레비를 떠올린다. 그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권층 포로들을 보자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지고 또한 더 중요해지는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여기에서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우리가 인간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또는 유사한 시련이 다시 닥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을 방어하고 싶다면,·······이 인물들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권층 포로는 라거의 전체 인구에서 소수였지만 생존자들 가운데서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말로 한 이야기든 글로 쓴 것이든 생환자들의 기억 중 대부분이 이렇게 시작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 수용소의 현실에 맞닥뜨린 최초의 충격은 예견하지 못하고 이해도 할 수 없었던 누군가의 공격이었는데, 관리자 포로라는 새롭고 이상한 적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자신은 잃어버렸지만, 상대는 아마도 아직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을 존엄의 불씨를 꺼뜨리고자 했다.

 

라거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사회에서 특권층의 부상은 걱정스럽지만,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권층은 유토피아에서만 없다. 모든 부당한 특권에 대항해 전쟁을 하는 것은 의로운 인간의 과제이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수 또는 한 사람이 다수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곳에서 특권은 태어나고, 권력 자체의 의지에 반하면서도 특권은 증식한다. 그러나 한편, 권력이 특권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관리자 포로라는 혼성 계층은 수용소의 골격을 형성하며, 동시에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것은 주인과 하인의 두 영역을 나누는 동시에 연결하는, 경계가 불분명한 회색지대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판단 욕구를 교란하기에 충분한 무엇을 그 안에 품고 있다.”(44~46)

 

실로 통절한 지적이다. 특권층 포로, 그러니까 부역자에게서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인간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또는 유사한 시련이 다시 닥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을 방어하고 싶다면,·······이 인물들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함에도 나는, 우리는 딴짓하느라 유구하게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늦었지만 바야흐로 부역 생태 서사 기치를 올릴 때다. 누가 그 기치를 올리는가?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 있고, 더 자격 있는 사람 대신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을 찬찬히 검토하고, 자신의 기억을 모두 되살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또 그 기억 중 무엇도 가면을 쓰고 있거나 위장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점검해본다. 그런데 아니다. 명백한 범법행위를 발견하지 못한다. 누구의 자리를 빼앗은 적도 없고, 누구를 구타한 적도 없으며·······, 어떤 임무를 받아들인 적도 없고·······, 그 누구의 빵도 훔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각자가 자기 형제의 카인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자기 옆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그 사람 대신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상상, 아니 의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상이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자신들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용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증언했다.·······아직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증언이 생존의 특권, 그리고 큰 문제 없이 여러 해를 사는 특권을 내게 가져다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를 괴롭힌다. 왜냐하면 특권에 걸맞은 결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다.·······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말문이 막힌 상태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고, 자신들의 증언이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다.”(95~99)

 

실로 통렬한 고백이다. 최악의 사람, 예외, 그러니까 부역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만이 부역 생태 서사 기치를 올릴 수 있다. 이 부역 생태 서사야말로 수용소 사회, 수용소 국가, 수용소 지구를 해석·변혁할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다. 0.1% 반역자는 영혼이 죽었으므로, 0.1% 최고의 사람은 육신이 죽었으므로, 99.9% 부역자 가운데 제 오장육부를 드러내는 사람이 부끄러운 만큼 찰지게 반역과 부역과 희생 증언을 구성한다.

 

부역자임을 자인하는 나나보조라야 온전히 증언할 수 있다. 내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나나보조 불순물 생명이라야 영적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 나나보조가 경계를 가로질러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을 깨뜨릴 수 있다. 그 나나보조가 최고의 사람이 침묵으로 들려주는 진실을 부단히 웅얼거릴 수 있다. 그 나나보조가 반역자들을 꿰뚫어 보는 위치에 서서 스스로 부역자임을 알지 못하는 부역자들이 가닿기 어려운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0.9% 나나보조가 세계를 망치는 행동대원인 99% 부역자 중 2.6%만 깨우면 인류에게 희망을 남길 수 있다. 2.6% 부역자는 나나보조 시야 안에서 무심코 부유한다.

 

부유하는 부역자를 깨우기 위해서는 부역 생태 서사가 필수적이다. 부역 생태 서사는 반역자에 빌붙어 자신과 다른 생명 간 네트워킹을 파괴한 부역자 내부 고발이다. 내부 고발은 곡진한 참회록이며, 옹골찬 격문이며, 제국 프레임을 부수는 학문이며, 순수주의 가면을 벗기는 문학이며, 최고의 사람을 위한 해원 굿이며, 네트워킹 재건을 향한 기도다. 네트워킹은 인류 너머 저 미소 생명, 더 멀리 바이러스, 심지어 비생명까지 잇는 우람하고도 섬세한 화쟁 운동이다. 화쟁 운동이 실패하면 지구생태계에 장차 인간이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부역 생태 서사는 묵시록이다. 내가 쓰는 이 부역 생태 서사는 내 증언(testamentum)이자 약속(testamentum)이자 유서(testamen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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