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동안 넘음으로써예를 갖추고 싶었으나, 아직 그러지 못한 산이 하나 남아 있다: 도봉산. 추석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마침내 나는 도봉산으로 향했다. 서울살이 60년이 다 돼가는데, 여태 넘지 못한 뚜렷한 이유란 물론 없다. 구태여 구실 짓는다면, 아마도 그 여정을 마무리할 대상으로 무의식에 담아두었다는 말이 가장 그럴듯할 테다.

 

갈 길을 스마트폰으로 찾아 대강 그렸다: 보문사 계곡(무수골)-도봉산 주 능선-오봉 능선-송추계곡. 본디 보문사 계곡 마지막 부분에서 보문사-우이암을 경유하는 길이 아닌 직진 코스를 택했는데 잘못 가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보문사 앞에 당도했고, 불가피하게 우이암을 지나서야 주 능선으로 접어들 수 있었다. 그 밖에 가족과 저녁 식사 약속한 시각에 맞추려고 송추계곡 후반 구간에서 뛰다시피 한 일 빼면 전체적으로 순조로웠다.

 

보문사 계곡은 무수골이라고도 부른다. 무수(無愁)천이 흐르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왜 근심 없다는 말을 붙였을까. 내력을 알아볼 마음은 없거니와 내 경험이 직접 찾은 답은 바로 향기다. 장마철 갓 지나 적절한 습도가 유지되는 서북 사면에서, 무심코 지나치면 맡을 수 없는 은은한 과실주 향기가 피어오른다. 야생 낙과들이 자연 발효되기 때문이다.

 

인간 몸이 어떻게 알코올을 견디고 심지어 즐길 수 있게 되었는지 아직 과학적 해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력한 설명은 공생이론이다. 식물이 번식을 위해 좋은 향과 맛, 그리고 좋은 기분(無愁)을 어떤 영장류에게 선물했다는 이야기다. 십분 공감한다. 과실 자체와는 또 다른 향미를 지닌 술이 인간 역사에 끼쳐온 영향은 필설로 형언하기 어렵다. 발효는 결국 곰팡이가 본진이니 나는 무수골에서 한층 거룩한 곰팡이 제의를 집전한 셈이다.

 

무수골 초입에 작은 사색 공간 숲이 마련돼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홀연히 버섯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다른 사람들이 사색을 뭐라 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게 사색이란 그냥 버섯이었다. 버섯 말고는 어떤 마음결도 어떤 몸짓도 일으킬 수 없어서 나는 숨을 멈추고 땀에 흠뻑 젖으며 그들에게 몰입했다.

 

버섯은 곰팡이 생식기 또는 꽃 또는 열매다. 그러고 보니 무수골은 어떤 숲에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풍성한 곰팡이 선물을 내게 안겨주었다. 끄트머리에서 무수골을 벗어나 보문사(원통사)와 우이암(관음봉)을 거치면서도 내 영혼은 온통 그 향기와 이미지에 휩싸여 있었다. 보문사와 우이암이 제공한 전망으로 도봉을 기리면서 주 능선에 섰을 때조차 바람은 한쪽에서 불어왔다. 송추계곡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 소리를 듣고야 화들짝 깨어났다.

 

1970년대 송추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다. 하천과 길을 잘 정돈하고 영업장은 한군데로 모아 놓아 깔끔한 느낌이다. 물 흐르는 풍경을 내려다보며 늦은 점심을 먹는다. 이런 마무리가 늘 반복되지만 대개 개운치 않다. 인간이 들인 공은 아무리 해도 음식이든 집이든 거리든 숲을 거스르기 마련이다.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본 도봉은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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