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방식 - 서로 기여하고 번영하는 삶에 관하여
베론다 L. 몽고메리 지음, 정서진 옮김 / 이상북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상대적으로 친족 범위가 좁은 편이다. 생물학적 친족 외에도 우리는 공통된 민족이나 인종, 성별 또는 사회·경제적 지위 같은 다소 편협한 정의에 근거해 가치를 공유했다고 여기는 이들을 실용적인 친족으로 포함하는 인습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인습은 우리가 누구와 친구가 될지, 누구와 같은 동네 또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지, 그리고 누구와 사회적 맥락에서 주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할지 결정할 때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이들과 친족 형태로 가까이 지내지만, 이는 사실 동종애Homophily로 알려진 개념이다.

  나는 친족관계에 대한 우리 인습을 재고할 때라고 느낀다. 조언이나 지도 역할을 맡은 사람 주된 목표는 공동체에 속한 모든 구성원 사이에 동류의식을 증진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리함으로써 특정 개인 아닌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전략적 에너지 할당을 위한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우리가 친족 개념을 확장해 전 세계 모든 존재에 적용하기로 결단할 때, 인류로서 우리, 그리고 지구 전체 건강과 존속에 좋은 결과가 나온다. (식물의 방식173~174)

 

어떤 결정적 대목마다 떠오르는 사상가가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자기 고향만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숙한 초보자다. 모든 땅을 자기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강한 자다. 전 세계를 타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완전한 자다. 미숙한 영혼을 지닌 자는 자기 사랑을 세계 속 특정한 한 장소에 고착시킨다. 강한 자는 자기 사랑을 모든 장소에 미치게 하려 한다. 완전한 자는 자기 장소를 없애버린다.”

 

유그, 그가 남긴 이름이다. 그가 남긴 이름과 이 말 이외에 나는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는 내게 어떤 사상가보다 빛나는 존재다. 그가 서양 사상사에서 투명 인간에 가까운 까닭은 그가 남긴 이 말이 서양 사상 본진을 내파內破하기 때문이다.

 

유그 어법대로라면 서양 사상 본진은 강한 자를 추구한다. 실제 정치와 경제도 그 사상을 좇는다. 90% 가까운 미국 하원의원이 여권을 소지하지 않는다. 모든 나라를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강자들이 지구 전체 건강과 존속에서 어떤 존재인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를 느낄 수 없다.

 

유그는 초보자와 강자가 준동하는 세상을 고요히 관통해버린다; 자기 근거를 지움으로써 중심주의를 베어버린다. 식물의 방식저자도 강한 자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인다. 친족 개념을 확장해 전 세계 모든 존재에게 적용하자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동종애Homophily를 비판한 취지를 헤아리면 친족 확장이 동종 확장과 같은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달라도 공생 당사자로 맞이한다면 그를 친족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식물 방식으로 우리 삶을 정향하고자 한다는 이 책 종지에 따라 나는 유그 눈으로 재해석한다. 유그 눈은 나무, 그리고 소뇌 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