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안 산과 바깥 산이 네 개씩 있다. 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이 네 개 안 산이고, 북한산, 용마산, 관악산, 덕양산이 네 개 바깥 산이다. 이때 안과 바깥은 물론 한양도성을 중심 삼은 풍수 표현이다. 유난히 낯선 이름이 바로 덕양산이다. 사실 나만 해도 30년 전에 행주산성 가본 적이 있으면서 그 성을 품은 산이 덕양산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덕양산(124.8m)은 작은 산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미 위례 백제 때부터 여기에 성을 쌓았다. 물론 고려 때도 사용했다. 마침내 조선 때 임진왜란에 이르러 행주대첩 근거지로서 큰 산이 되었다. 지금은 비록 일부만 남아 있지만, 산성이 모조리 없어진다 해도 덕양산은 다만 동네 뒷산으로 퇴락하지는 않으리라. 늘 그러하듯 느닷없이 깊어지는 숲에 놀라며 천천히 오른다.

 

정상에는 행주대첩비가 우뚝 서 있다. 주민이 먼저 자발적으로 세웠는데 나중에 정부가 들어 뜨르르하게 각을 잡았다. 그런 토건 벌여 매판 정체성을 호도한 박정희가 글씨도 써주었다. 그 풍경을 차마 기릴 수는 없다. 다행히 비 뒷면에 돌덩이를 들어 나르는 민중 모습이 있어 마음에 눌러 담는다.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가 뚫리면 한양도성은 한 걸음이겠구나, 와닿는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폭염주의보에 아랑곳하지 않고 땀범벅인 채 오르내린다. 버섯 보고 길 벗어나기를 반복하면서 틈틈이 열려 하늘 아래 펼쳐지는 한강 주변 풍경을 이슥히 내려다본다. 역시 인간에게 작은 산이란 없다. 언제 다시 이 큰 산에 들지 모른다. 그럴 일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일 없어도 덕양산과 한 숨결 나누었으니 서운하지는 않다.

 

숲에서 나와, 도시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한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 자리는 모두 인맥이 결정하는데 나는 왜 맥만 쌓을까? 나는 인간을 사랑해 인간이 되었으나 인간에게 절망해 되돌아가려 하염없이 숲으로 향하는 나무일까? 할 수만 있다면 뇌 포함 내 모든 기관을 해체해 온 생명 네트워킹 만드는 제물 삼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은 사실이다.

 


아스라히 보이는 북한산과 용마산 모습




구름보다 더 멀리 펼쳐져 있는 관악 능선




돌덩이를 들어 나르는 민중




숲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강 풍경




영지버섯이 자라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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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4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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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4 15: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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