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다가 다시 시작된 치과 치료를 마치고 안양과 과천 경계를 넘나들며 난 길을 따라 관악산으로 들어갔다. 국기봉(525m)을 넘고 국사봉을 지난 뒤 연주대 직전에서 서울 관악구로 접어들어 서울대학교 쪽으로 내려갔다. 잠시 캠퍼스를 경유하다 다시 계곡으로 들어가 관악산 공원 입구로 나왔다. 4시간 30분에 걸쳐 산을 넘었더니 건강 앱에 17km가 떴다.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한의대 후배들한테 강의한 뒤 함께 식사했는데 그다음 날부터 컨디션이 급작스레 나빠졌다. 그래서 더욱 산을 향했다. 게다가 몸 탓으로 위축되는 마음 상태라면 지난번 문수봉-비봉 경험 결과를 확인할 절호 기회라 여겼다. 거의 매일 사고가 나는 이른바 악산이라는데 출퇴근 복장으로 들어가 어찌 적응하는지 두고 볼 일이었다.
조망 관점이 이뤄지는 곳까지 올라가서 봐도 관악 정상 기후관측소와 송신탑 무리는 아스라할 따름이다. 다행히도 나는 등산하지 않고 숲 요정을 찾아다니므로 매 순간 집중과 확산이 뒤섞이면서 빚어내는 압축 시간 덕분에 본디 짐작보다 이르게 연주대(629m) 가까이 이르른다. 눈앞에 나무나 바위 아닌 물체들이 수직으로 들이닥치고야 황급히 ‘정복’ 길을 거둔다.
북한산 못지않게 바윗길이 많고 위험하지만, 문수봉-비봉을 떠올리면 단박에 표정이 풀린다. 정색하고 낭떠러지 끝에 서본다. 고요하다. “됐다.”가 확실하게 됐다고 한다. 치료하는 일에 그다지 문제 삼을 일이 아니어서 그동안 놔두었던 내 마지막 공포가 마침내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로써 또 한 걸음 온전함에 다가선다. 물론 누구도 온전할 수는 없지만.
인간에 비하면 관악산은 온전히 아름답다. 경기 오악에 속하며 금강산과 견주어 西금강이라 했다니 과연 그럴 만하다. 빼어난 바위 자태가 분명 북한산을 압도한다. 더구나 내가 ‘찐’ ‘애정’하는 함박꽃나무를 산에서 보기는 여기가 처음이다. 숲을 나서는 마지막 순간, 목이 잔치까지 벌여준다. 우리 집 거실 정남향에 바로 이 관악이 장엄히 앉아 계시니 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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