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곶자왈이다. ()자왈(덤불)은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석 덩어리들이 널린 곳에 이루어진 숲이다. 곶자왈도 언제 꼭 한 번 혼자 걸어보고 싶었던 곳이다. 왠지 알 수 없으나 배고픈 생각이 들지 않아 점심 식사를 거른 채 숲으로 들어간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아 내 분위기는 아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인 듯 흘러간다.

 

정말 난생처음 보는 숲이다. 운동하러 오지 않았으므로 연신 시선을 360도 돌리면서 천천히 걷는다. 뭍에서 볼 수 없었던 개가시나무 자태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는가 하면, 청아하게 지저귀는 섬휘파람새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사이사이 달팽이 눈으로 버섯을 찾는다. 돌꽃과 이끼는 뭍보다 훨씬 더 자주 나타나 같고 다름을 재빨리 구별하며 지나간다.

 

비교적 쉬운 테우리(몰이꾼)길을 지나 가장 걷기 힘든 가시낭(가시나무)길로 접어든다. 바닥에 무수히 깔린 돌덩어리 때문에, 수시로 발목이 꺾이며 미끄러진다. 이 험하고 깊은 숲 또한 4·3의 애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숨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이 깊은 숲은 얼마나 얕은가; 죽음이 주는 강고한 공포에 비해 그들이 쌓은 돌담은 얼마나 허술한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가시낭길에 비해 농사를 지으려 주민이 만들었다는 한수기길은 한결 편하다. 그보다 더 평탄한 길이 바로 빌레(너럭바위)길이다. 용암대지 지역이라 제법 흙길도 있고 무엇보다 그래서 아름다운 버섯을 만끽할 수 있다. 처음 보는 버섯 군락지에서 많은 시간 머무르며 진지하게 살피고 질탕하게 논다. 밀도 높은 시공이 감사하다.

 

해가 확연히 기울 무렵 곶자왈을 나선다. 들어갈 때, 넓은 곳이니 안내 책자를 가져가라던 직원 말을 떠올린다. 결코, 넓지 않다. 사방이 포위된 작은 숲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제주마저 숲을 속수무책 잃어가고 있다. 나는 오늘 잠시 그 증인으로 왔다 간다. 증인이 방관자이기 십상인 이 흉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걱정한다. 남은 날이 하 많지도 않은데.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두뫼산골 2022-05-21 0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 글을 잘 쓴다. 같은 곳을 보고, 걸어도 이렇게 그 감상과 표현이 새로울 수 있구나 부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