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 정군칠

 

모슬포에 부는 바람은 날마다 날을 세우더라.

 

밤새 산자락을 에돌던 바람이 마을 어귀에서 한숨 돌릴 때, 슬레이트 낡은 집들은 골마다 파도를 가두어 놓더라. 사람들의 눈가에 번진 물기들이 시계탑 아래 좌판으로 모여들어 고무대야 안은 항시 푸르게 일렁이더라. 시퍼렇게 눈 부릅뜬 날것들이 바람을 맞더라.

 

모슬포의 모든 길들은 굽어 있더라.

 

백조일손지묘(白祖一孫之墓) 지나 입도 2대조 내 할아비, 무지렁이 생이 지나간 뼈 묻힌 솔밭 길도 굽어 있더라. 휘어진 솔가지들이 산의 상처로 파인 암굴을 저 혼자 지키고 있더라. 구르고 구른 몽돌들은 입을 닫더라. 저마다 섬 하나씩 품고 있더라.

 

날마다 나를 세우는 모슬포 바람이 한겨울에도 피 마른자리 찾아 산자고를 피우더라. 모슬포의 모든 길들은 굽어 있더라. 그래야, 시절마다 다르게 불어오는 바람을 껴안을 수 있다더라. 그 길 위에서 그 바람을 들이며 내 등도 서서히 굽어 가더라.

 


모슬포,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 이름이 왜 내 기억 깊은 자리에 놓여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슴아슴 찾아가면 오래전 사라호 태풍과 관련된 라디오 드라마에 가 닿는다.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 무대가 제주도였고, 그 지명 가운데 모슬포가 있었던 듯하다. 드라마 제목을 포함한 내용 거의 모두가 기억에서 사라졌으나, 기이하게 최백호가 부른 주제가 대부분이 남아 있다. 이마저 모슬포를 다녀온 뒤에 떠올랐으니 어떤 기억은 몸에 깃드는 모양이다.

 

운진항에서 내려, 올레 10길이 지나가는 하모 해변을 걸었다. 정군칠 시에서처럼 날 세운 바람이 불었다. 모든 길을 걷지 않아 그 굽은 내력을 실감하지는 못했다. 다시 돌아가 모슬포항으로 갔다. 콘크리트 잿빛 귀퉁이에 언뜻언뜻 바다 남빛이 보이는 부두 음식점에서 소주와 고등어회로 저녁 식사를 대신했다. 똑같은 메뉴인데 옆 음식점엔 줄이 길다. 얼마나 더 맛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다음에 와도 이 집에서 먹겠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어디를 가도 제주는 4·3을 피해갈 수 없다. 백조일손지묘白祖一孫之墓는 표현만으로도 폐부를 찔러온다. 조선조에서도 일제 강점기에서도 대한민국 시대에서도 제주는 가혹한 착취와 살해 대상일 뿐이었다.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지극히 개인적 기억을 따라 그리움으로 왔으나, 모슬포 떠나는 발걸음은 공동체적 애통이 실려 철버덕거린다. 그렇게 오늘 60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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