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을을 벗어나 길 건너편 북오름(314.3m)을 향한다. 외지 사람이 거의 전혀 들어올 일 없어 보이는 곳이다. 나도 여기 와서 지도를 보고서야 알았다. 조금 걷다가 또다시 커다란 축사와 마주친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냄새가 풍겨 나오기도 하려니와 여러 마리 서 있던 누렁소 가운데 한 마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통에 그만 냄새를 잊는다. 무심한 듯, 슬픈 듯, 그 시선이 온갖 상념을 단박에 걷어 내버린다. 자신을 죽이려고 먹여 살리는 인간과 같은 종을 바라보는, ! 저 눈망울이라니. 홀연히 처연해진 마음이 이름 모를 후미진 길을 따라 오름 둘레에 번지듯 머물다 흩어진다.

 

스마트폰 지도 보고 가다가 길을 놓친다. 지도 작성 뒤에 누군가 길을 막았는데 version up이 안 된 탓인 듯하다. 마을 주민이 다시 가르쳐준 대로 숲길로 접어든다. 오름 안내판이 서 있으나 거의 방치 상태다. 걸을수록 길은 없어져 간다. 길 없는 길을 따라 이리저리 헤매면서 오직 두 가지 감각으로만 전진한다: 옆 거린오름(298.2m) 쪽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오르지 않고 내려가야 한다. 길 잃은 긴장감과 숲이 주는 안정감 경계를 오가며 한참 걷다가 나 스스로 북오름 둘레길을 만들고 있구나, 싶어 웃는다. 어찌 생각하면 한평생이 그랬다. 남이 가르쳐준 대로 산 적이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이탈과 개척이 겹치는 발길 따라 북오름과 거린오름 사이를 지난다. 왼쪽으로 돌아 나아가자 거린오름 영역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확연히 든다. 거린오름 자태를 확인하고는 둘레를 다 도는 대신, 서남쪽 자락에 펼쳐진 길을 따라 마을 아닌 마을로 향한다. 묵은 땅 군데군데 정체 모를 집들이 서 있을 뿐, 후미진 버덩이다. 이번도 방향감각만 믿고 가다가 막다른 곳을 만나 되돌아 나온다.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에게 길 잃은 길손과 도둑이 뭐 다르랴. 저 너머 들리는 자동차 소음이 멀지 않은 곳에 돌아갈 길 놓였음을 알린다. 무덤 한 기가 서두르지 말라며 길가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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