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성, 양자역학, 불교 영혼 만들기
빅터 맨스필드 지음, 이세형 옮김 / 달을긷는우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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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성 경험은 본질상 인과 아닌 의미로 연결된 객관·외부적 사건과 주관·심리적 사건을 필수 요소로 지닌다.(56-인용자가 독립된 두 문장을 의미 왜곡 없이 압축함.)

 

융도 맨스필드도 동시성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융은 맨스필드가 제외한 개념까지 포함한 채 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맨스필드는 정의라는 표제를 단 단락에서도 정의를 내리지 않고 위에서 인용한 특성을 제시하면서 동시성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점을 톺았다.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그는 가장 먼저 의미를 거론했다.

 

의미가 그냥 말이나 글이 지닌 뜻을 가리키지는 않을 텐데 애당초 의미로 번역한 자체부터 문제다. 번역서를 읽는 독자는 이게 왜 논란이 되는지조차 알아차릴 수 없다. 전체 문맥을 살피건대 이 의미는 객관·외부 사건과 주관·심리 사건을 연결시키는 필수 고리다. ‘의미가 결여된 초자연·비일상 사건은 동시성 경험일 수 없다. 그리고 그 의미가 단순한 정보나 지식 정도여서도 안 된다. 보상을 통한 개성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의미는 전체성으로 나아가는 발달과정에서 요긴한 메시지로 작용하는 무엇이다.

 

관건적 의미를 느슨하게 대한 결과 동시성은 접근도 이해도 쉽지 않게 되고 말았다. 이 상황을 추스른 다음, 맨스필드는 부정어법으로는 정의를 내릴 수 없으므로 이렇게 정리만 했다.

 

1. 동시성은 주관적인 것만이 아니다.

2. 동시성은 마술이 아니다.

3. 동시성에서 의미는 자아가 만든 산물이 아니다.

 

정리를 토대로 동시성 요건에서 누락된 부분만 더 이야기한다. 자아가 지닌 능력이나 소원 따위가 원인으로 작동해 빚어진 결과를 동시성이라 하지 않는다. 사건도 의미도 전체성이 그려진 네트워킹 풍경 속 맥락이 발현시킨다. 신학적으로는 은총이며, 경제학적으로는 선물거래에 해당한다. 이 인간적 묘사를 넘어선 생물학 차원에서라면 창발에 참여하는 창발이다.

 

다들 피한 정의를, 무릅쓰고 내린다면, 동시성은 의식 편향에 빠진 사람에게 무의식이 비인과적으로 다가와 전체성을 향해 발달하도록 주객·내외를 소통시키는 창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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