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성, 양자역학, 불교 영혼 만들기
빅터 맨스필드 지음, 이세형 옮김 / 달을긷는우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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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형성하는 세계관, 곧 과학적 물질주의는 실재에 대해 죽은, 그리고 죽어가는 이상이다. 이런 세계관은 자연에서 영혼을 배격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존재로 축소해버린다. 과학과 기술공학은 여러 차원에서 세계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이들이 가져온 변화는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이다. 물질주의 세계관이 물리적이고 심리적이며 영적인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다수가 동조한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간관, 자연관, 그리고 이 둘 사이 상호교류가 필요하다.(35)

 

저자인 Victor Mansfield는 명문 Cornell University에서 공부해 천체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Liberal Arts College(LAC) 가운데 최상급으로 이른바 Little Ivies라 분류되는 Colgate University 물리학·천문학과 종신교수 직에 있다. 그러면서도 깊이 영성을 연구해 심지어 미국은 물론 인도에서까지 영적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 출중한 성공은 그가 하는 말을 쉽게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드는 공신력으로 작용한다.

 

저자가 서론에서 드러낸 문제의식은 인류가 당면한 중차대한 위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더군다나 자신이 물리학자면서 과학적 물질주의 요체를 내파하고 영성 문제를 거론한다. 당연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전선에 서 있기도 하다. 최전선에서 그가 제시한 큰 그림은 새로운 인간관, 자연관, 그리고 이 둘 사이 상호교류. 십분 지당하다. 쉽지 않은 이론과 쉽지 않은 실천을 예고하고 있다. 만사가 그러하듯 바로 이런 강점에는 그만한 아킬레스건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평범한 독자는 거기까지 읽어내야 한다.

 

저자는 독자 대부분과 달리 지구촌 중심, 거기서도 상위에 있는 비범한 사람이다. 국가, 학문, 직업, 인종 모두에서 그렇다. 가운데 있으면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위에 있으면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가 변하는 일은 늘 가장자리, 아래서 시작된다. 중심과 상위는 일극집중으로 흘러가기 쉬워 변화다운 변화, 그 진경을 상상하기 어렵다. 변방 하위가 지니는 상상적 특권에 유념해 읽으면 지식이 모자라도 넘치게 깨칠 수 있다.

 

변방 하위에서 곡진하게 물어본다.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가장자리 아래서 옹글게 물어본다. 자연은 과연 무엇인가? 동시성은 이 질문에 과연 대답할까, 한다면 어떻게 할까? 양자물리학과 불교, 그리고 철학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 모든 의문을 결곡하게 하려 할 때 필요한 일은 지식 확충이 아니라 관지 확증이다. 누구도 보편이지 못하다. 개체 맥락을 끌어안고 질문하며 대답할 뿐이다. 다른 경우와 달리 내가 이 문제를 서론부터 꺼내는 이유는 모름지기 이 문제가 묵시록적 징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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