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서울둘레길 증산-봉산-앵봉산 구간 13.5km(숲 없는 부분 제외)를 걸었다. 예상 밖에 지루하도록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거의 직선 구간이다. 3시간 40분 걸렸다. 다소 피곤하지만 시작부터 종료까지 깔끔했다. 서울둘레길, 이제 두 구간 남았다.

 

지하철 6호선 증산역에서 내려 큰길을 벗어나 조금 걸으니 모퉁이에 소박한 중국음식점이 있다. 불 맛이 상큼한 해물짬뽕 시켜 점심식사를 하고 천천히 걸어 증산甑山 입구에 들어선다. 산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길가 버려진 나무에 아름다운 버섯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반가이 인사를 나누는데 그런 나를 보고 동네 개가 컹컹 짖는다.


 

증산은 시루 모양이라 해서 이름붙인 언덕 높이 낮은 산이다. 증산교 창시자인 강일순 선생 호가 증산인데 한자까지 똑같아 재미있기는 하지만 아무 관련이 없다. 얼마간 오르니 길가에 버려진 무덤 몇 기가 흩어져 있다. 그 중 유난히 제비꽃으로 뒤덮인 무덤이 있다. 무덤 주인이 생전에 제비꽃을 무척 좋아했나보다 생각한 뒤 부질없는 인과론이다 싶어 웃는다. 무덤과 예닐곱 발자국 떨어진 곳에 문득 눈길이 멎는다. 사람 죽어 누운 무덤을 꽃이 덮듯 나무 죽고 남은 등걸을 버섯이 옹글게 덮고 있다. 여정은 달라도 생사 순환하는 이치는 다르지 않구나.



 

대부분 능선길인데 다른 데 비해서 단조로운 편이다. 걷다가 이따금씩 진행 상태를 확인해보면 가야 할 길이 제법 아득하다. 오르고 내리기를 거듭하며 봉산(207.8m)을 지나 한참 걷다가 조금 지친다 생각하는 순간, 뒤에서 오던 어떤 사람이 저기, 앵봉산 정산 보이네!’ 한다. 이번 길에서는 가장 높은 235m 봉우리다.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비하면 야산 수준이지만 머리 생각과 다리 생각은 다르다. 앵봉산에 올라 서쪽을 내려다보니 오돌토돌한 지평선 급 고양, 김포 땅이 펼쳐진다. 내려갈 길만 남았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과연 남은 길은 금방이었다. 마무리 느낌이 좋은 길을 따라오다 잠시 앉아 발먼지를 털어내고 옷차림을 정리했다. 구파발역에 도착하기 직전 공원에 서 있는 벚나무 줄기 위 어여쁜 돌꽃(지의류)을 만나 작별인사를 하고 보니, 가족과 약속한 시각 한 시간 전인 17:3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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