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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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미세하게 나누느냐로 시간을 제어합니다.(149)

 

 

<진면목>

 

마음의 실상을 얼굴 표정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마음의 실상을 얼굴 표정으로 감추는 사람이 있다. ㅅㅅ를 처음 보았을 때 뭐랄까, 결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소하는 증상으로 판단컨대 그의 결곡한 인상은 아무래도 마음의 실상을 은폐하기 위해 형성된 방어기전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이로 따지면 그는 확실히 중견 간부급 회사원이다. 이를테면 산전수전 다 겪은 사회생활의 베테랑이랄 수도 있는 위치였다. 그런 그의 문제는 단순하다 못해 사소하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 뭔가 손으로 움직여 하는 간단한 동작을 못 하는 것이었다. 과도하게 손이 떨리기 때문이었다. ㅂㅇ가 물었다.

 

떨릴 때,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ㅅㅅ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억제하죠.”

 

ㅂㅇ가 다시 물었다.

 

억제하면 잘 되시던가요?”

 

ㅅㅅ가 찰나적으로 화난 표정을 지었다 풀었다는 사실을 ㅂㅇ가 모를 수 없다. 잘 됐으면 왜 여기 왔겠느냐는 뜻이니 말이다. ㅂㅇ는 나지막이 말했다.

 

일부러 더 크게 떨면 잘 됩니다.”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난 듯 했다. 손 떨림을 과잉 동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료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ㅅㅅ는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이다. ㅅㅅ는 매우 오랫동안 이름 석 자 대면 웬만한 사람 다 아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한테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ㅂㅇ가 이치를 설명했다.

 

원하는 정상 상태는 손동작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유연하게 동작을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문제의 손 떨림이 두려움 때문에 억제되어 나타나는 경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관건입니다.”

 

ㅅㅅ는 끝내 수긍이 가지 않는 표정을 지우지 못 했다. ㅂㅇㅅㅅ의 생각을 돌이키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손 떨림 자체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떨면 안 된다는 전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이 집중될 때, 떠는 게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왜 떨면 안 될까요?”

 

ㅅㅅ가 더욱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선생님도 떠십니까?”

 

ㅂㅇ가 단호히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ㅅㅅ는 실망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선생님은 떠시지 않아야 맞는 거 같은데요.”

 

홀로 있을 때 홀로 행하는 손동작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것이면 이는 일종의 상호작용이다,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 노련한 연극배우도 수백 번씩 오르는 무대지만 그때마다 떨린다, 떨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덜 떨다가 이내 유연해지고 부정하면 더 떨다가 이내 경직된다, 다시 한 번 곡진한 설명을 덧붙였다.

 

ㅅㅅ는 흔쾌히 한약 한 제를 짓기로 하고, 다음 상담 예약을 잡았다. 약속한 날 그가 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 이야기는 내가 그 동안 숙의치유를 하면서 경험했던 일 77개를 추려 단편소설 방식으로 재구성한 숙의의학 소설집 나니까 망정이다에 들어 있는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다.

 

거의 모든 사람이 불안하거나 두려워서 떠는행동을 억제 대상으로 인식한다. 떨지 않는, 더 정확히는 정지 상태를 정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불안이나 두려움을 일으키는 요인이 엄존할 때 정지는 정상이 아니다. 정지는 얼어붙는 상태기 때문이다. 얼어붙는 상태는 즉자적 공포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떠는 행동을 정지하면 결국 공포로 억지 퇴행해 심신을 급격하게 병적 스트레스 상황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실제로는 떠는 행동을 억제하면 도리어 더욱 떨게 된다. 떨만한 이유가 있어서 떠는데 이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반응하는 저항 행동이다. 저항을 유발하지 않으려면 떠는 행동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진짜 정상 상태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진짜 정상 상태는 불안이나 두려움을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 또는 해소하기 위한 부드러운행동이다.

 

부드러운 행동이란 무엇인가? 시간을 미세하게나누는 행동이다. 구태여 비교한다면 떠는 행동은 빠르게움직이는 행동이다. 떠는 행동으로는 시간이 정상적으로 제어되지 않는다. 자기 시간을 미세하게 나누면 그러지 못했을 때 불안이나 두려움 요인으로 작동했던 상황을 꿰뚫어볼 수 있다. 그렇게 관통하면 불안이나 두려움을 해결 또는 해소할 수 있다.


<진면목> 주인공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퇴사는 진즉 했을 테고, 더는 손 떨 일 없는 삶 속에서 행복한 여생 보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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