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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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나타내는 어휘가 하나 늘면 표정도 하나 늘고, 발성도 하나 늘고, 신체 표현도 하나 늘고.......그렇게 인간 신체는 쪼개지고 쪼개져서 치밀해집니다.(124)

 

사용할 수 있는 기호가 그렇게 하나하나 늘어 가면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이나 억양에서 아주 섬세한 심리 상태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서로 주고받는 메시지 종류가 점점 늘어납니다. 정서가 풍부해집니다. 정서란 어휘나 표정, 발성, 몸짓으로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구별해서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125)

 

내가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켜기다. 의료기관 청구프로그램 열기와 글쓰기, 둘을 위해서다. 내 손 닿은 화면 들머리에는 딸아이 아기 때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사진을 걸어 놓은 이유는 아기 사진을 보면 내 감정과 태도가 섬밀해지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을 어린 아기처럼 섬밀하게 대한다는 다짐 실은 제의적인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다.

 


섬밀하다섬세하다치밀하다를 결합한 말이다. ‘섬세하다곱고 가늘다. ‘치밀하다곱고 촘촘하다. ‘촘촘하다가늘거나 작아서 사이가 좁다. 그러므로 섬세하다는 쪼개진 무엇 하나하나를 묘사하고, ‘치밀하다는 쪼개진 무엇 사이를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동사적으로 쓰일 때도 그러하다. 섬밀하다는 사뭇 귀한 말이다.

 

섬밀한 어휘, 표정, 발성, 신체 표현, 마침내 신체 자체를 섬밀하게 섬밀할 때, 그 섬밀함이 번져가 정서 네트워킹을 일으킨다. 네트워킹이 꽃필수록 정서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풍요 정서가 찰나마다 곳곳마다 장엄을 감촉할 수 있게 한다. 장엄 감촉은 행복이라는 통속한 표정을 쓰다듬고 넘어간다. 넘어서 소소소소騷騷蕭蕭 창발 생명이 어울려 춤춘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다른 모든 감정을 제압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사람 하나 내게 온다. 다른 모든 입구를 닫고 그 감정 하나를 위한 출구만 연다. 그는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과연 그런지, 묻고 살피는 일 없이 한사코 감싸서 키운다. 타인의 억울함에는 무감하다. 어떤 숙의도 허사다. 최후로 나는 그 감정 어휘를 섬밀하게 흔들고 있다.

 

어휘가 감정을 모두 포박할 수 없음에도 대개 어휘에 힘입어 격정을 구축한다. 그 어휘를 흔들어 민낯을 드러내줘야 격정이 무너져 다른 감정을 해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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