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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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복잡하다든가 단순하다는 말을 통상 쓰는 낱말 뜻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복잡함이란 단적으로 다른 것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상황을 일컫는다. 크다와 작다가 같은 낱말로 표현되고, 그 경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그때 식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전형적인 예다.......

  한편, 단순함은 무엇을 뜻하는가. 잘 생각해보면 이 또한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상황이다.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조지부시 대통령이 세계 각국을 향해 미국과 함께 할지, 테러리스트와 함께 할지 선택하라고 강요한 상황이 전형적인 예다.(47)

 

단순한 사람이나 복잡한 사람이나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거나, 서로 다른 것을 한 꾸러미 안에 집어넣어버리는 조작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 복잡한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같은 꾸러미 안에 집어넣어두면서 서로 다른 것이 어쩌다 보니 같은 꾸러미 안에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점에서만 다르다. 결국 단순함이나 복잡함이란 동일한 조작 사이 작은 정도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48~49)

 

나는 <까매서 하얀 세계로>에서 저자로서는 최상 선택이나, 복잡하다 단순하다 하는 어휘가 명석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명석하지 못한 어휘 선택은 대개 오류로 흘러간다. 판단하건대 우치다 타츠루는 자기 철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논리학적 토대를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 강의 스타일을 보면 누명은 아니다.

 

복잡함은 진리 복수複數성을 인정하는 이른바 다치논리학 세계다. 단순함은 진리 단수單數성을 고집하는 형식논리학 세계다. 둘을 동일한 조작 사이 작은 정도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은 단순한 사람이다. 단순한 사람은 복잡한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같은 꾸러미 안에 집어넣어두면서 서로 다른 것이 어쩌다 보니 같은 꾸러미 안에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점에서만 다르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이 어쩌다 보니 같은 꾸러미 안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 다른 것이 같은 꾸러미 안에 있는 비대칭대칭을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진정 복잡한 사람은 그 모호성이야말로 세계 구성 원리며 운동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사람은 단순한 사람이나 복잡한 사람이나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거나, 서로 다른 것을 한 꾸러미 안에 집어넣어버리는 조작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사람에게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거나, 서로 다른 것을 한 꾸러미 안에 집어넣어버리는 조작은 관용이고, 단순한 사람에게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거나, 서로 다른 것을 한 꾸러미 안에 집어넣어버리는 조작은 폭력이다. 관용과 폭력을 과연 정도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론상 복잡과 단순은 교차 또는 순환이 가능하다. 현실에서 복잡한 사람은 단순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단순한 사람은 복잡을 선택할 수 없다. 인류역사가 웅변으로 증명하는 바다.

 

조지 부시를 예로 들면서도 이 격절을 쉽게 흘리는 까닭은 그가 무예인이기 때문이다. 무예는 근본적으로 살육 기술이다. 여기에는 관용이 존재할 수 없다. 철학 사유가 모호성을 인정하더라도 무예 신체는 모호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 모순을 그 스스로가 실감하지 못하는가보다. 복잡과 단순은 정도 아닌 관지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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