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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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에서 언어적인 메시지를 주고받는 능력보다 극히 미세한 징후 차이에 주목해서 메시지 독해 레벨을 읽어내는 능력이 생존전략상 더 우선한다.(29)

 

우치다 타츠루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어에서는 ken이라는 같은 단어로 강하다약하다를 동시에 표현했는데, 강함을 표현할 때는 글자 뒤에 똑바로 서 있는 남자 그림을, 약함을 표현할 때는 글자 뒤에 힘없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남자 그림을 그려 넣어 구별했다고 한다. 이 그림이 ken의 메타메시지, 그러니까 독해를 규정하는 상위메시지다. 그림은 의미를 인식하도록 이끌지 않고 말의 촉감에 감응하도록 이끈다. 실제 발화 현장에서는 말투, 눈길, 표정, 몸짓 따위들이 메타메시지로 작용한다. “극히 미세한 징후가 커다란 언어 의미를 통제·조정한다. 강전强電을 통제·조정하는 약전弱電과 본성상 동일하다. 약전 없는 강전은 에너지로서 실재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빠진 궁경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베이트슨이 제기한 이른바 이중구속 이론을 언급한다.

 

말로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엄마 품에 안기고 싶어 다가오는 아이에게서 몸을 돌려버리는 어머니가 자신이 실제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진퇴양난에 빠지게 하는 상황이 전형에 해당한다. 아이는 사랑한다고 독해해도, 그렇지 않다고 독해해도 궁지에 몰린다. 어머니가 상위메시지와 메시지를 전도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이 출구 막힌 삶을 돌파하지 못한 아이는 병적 극단으로 파고들어 연명한다.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는 교묘한 말로 피하거나, 모든 메시지에서 중요한 의미·의도를 찾으려고 집착하거나, 모든 메시지에서 일률적으로 중요성을 지우거나, 외부 메시지와 일절 접촉하지 않는다. 임상에서는 자기부정형과 타자부정형으로 나뉘어 포착된다. 위장된 경우도 있다. 치료가 퍽 어렵다.

 

타자부정형 이중구속 상태라서 매우 오랫동안 숙의치료를 했으나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인 청년이 있다. 그는 타고난 영악함으로 위장한 채 살아가면서 자신을 속이고 자기가 속는 줄 모른다. 모든 타자 메시지가 공격이라고 믿는다. 그 공격을 과도하게 부풀린다. 자신을 변화로 이끌려는 메시지에는 감각, 감응, 감수, 감동, 감화, 감정, 감행, 감사 반응을 일절 보이지 않는다. 의미를 머리속에 넣어두는 일을 노력과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메시지가 지닌 촉감에 가닿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변화를 바란다고 주장하는 머리메시지와 변화를 바라지 않아 요지부동인 메시지 사이 전쟁에서 늘 몸이 이기는데도 머리 메시지를 자신이라 우기므로 그 괴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발작한다. 이중구속 내재화 상태다. 내재화는 무섭다. 진척되는 기미가 없다.

 

상호소통하지 않으면 생명이 아니다. 생명은 모호함을 본성으로 지닌다. 찰나마다 달리 발현하는 본성 메시지를 독해하려면 도저한 미세 징후를 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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