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 집회의 수행성 이론을 위한 노트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 외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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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가 수행성을 띤다 할 때 그 의미는 젠더가 특정 종류의 상연이라는 뜻이다. , 우리는 현재젠더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떻게 상연할지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상연은 그렇게 존재론 일부이자, 젠더 존재 양태를 재사유하는 한 방식이다. 따라서 언제, 어떻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면서 그런 상연이 일어나는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이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바로 그 젠더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89)

 

성별性別을 표현하는 용어 섹스sex는 생물 개념이다. 이와 마주한 사회 개념인 젠더gender는 심지어 여성조차 모르기 일쑤다. 그만큼 섹스는 성불평등 현실을 반영하고 젠더는 반대한다. 본디 이치가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남성 패권 사회가 생물 섹스에 불평등을 사회적으로 뒤집어씌웠기 때문이다. 부패한 사회가 언어를 부패시키는 이 상황을 전복하려면 비상한 사회적 수행성이 요구된다. 그 수행성을 이끌려고 세운 언어가 젠더다.

 

1995년 처음 등장한 이래 젠더 수행성은 부단히 그 형상을 만들어왔다. 수행성 형상은 본성상 상연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상연은 현재 존재를 서술하는describe 일이 아니다. 미래 당위를 이미 이루어진 관지에서 규정하는prescribe 일이다. 프랑스어로 치면 전미래 시제 행동이다. 전미래 시제 행동인 상연은 존재 양태를 재사유하는 한 방식이며 변화를 구동하는 제의다. 제의는 미래 기억을 오늘 기념하는 거룩한 놀이다.

 

거룩한 놀이는 접히고 구겨진 성 평등 진실을 활짝 펴는 옹글고 우렁차고 요란스러운 몸짓, 연기演技로 구성된다. 우람한 연기는 이제까지 얼마나 어떻게 아프고 슬픈가를 한껏 실컷 드러냄과 동시에 인제부터 얼마나 어떻게 즐겁고 기쁠까도 한껏 실컷 드러낸다. 이 비대칭대칭 경계에서 미래는 과거를 재구성해 현재로 도래한다. 바로 이 누리가 수행성의 진경이다. 젠더 맥락에서 밝혀진 수행성 진경은 다른 모든 맥락을 관류한다.

 

숙의치료도 연대하는 신체들이 행하는 거리 정치에 해당한다. 당연히 수행성 원리가 적용된다. 보통 두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치유연대는 따로 또 같이 우람하게 연기해 마음 아픈 사람이 미래로써 과거를 재구성해 현재에 살도록 이끈다. 내 경험상 치유연대 대상은 거의 대부분 여성이었다. 젠더 맥락이 어떻게 가까운 곳에서 구체적으로 작동하는지 몸으로 느껴온 시간은 나를 더 결곡한 성인지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복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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