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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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류는 각각 파트너가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너무나 혹독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속도위반'으로 결혼하게 된 연인과 비슷하다.......극한에서도 살아남는 지의류 생존력은 지의류 자체만큼이나 오래됐으며, 공생이 만들어낸 직접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157)

 

지의선사는 실로 초 절정고수 내공을 지녔다. 지구에서 가장 뜨겁고 건조한 사막에서도 두텁게 살아간다. 섭씨 영하 195도 액체 질소에 담갔다 꺼내도 금방 되살아난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 압력보다 100~500배 높은 압력도 견뎌낸다. 심지어 지구 바깥 우주에서 지구 행성대기권을 통과하는 동안 맞닥뜨리는 온갖 악조건도 통과한다.

 

지의선사 내공은 출생의 비밀에서 비롯했다. 그 비밀은 바로 공생이다. 지의선사 내공은 공생이 만들어낸 직접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이 공생이 문제적이다. 저자는 이를 '속도위반'으로 결혼하게 된 연인과 비슷하다고 표현한다. 번역 문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속도위반을 향한 통념적 시선은 그리 좋지 않다. 그럼에도 이 표현을 쓴 연유가 있을 터. “각각 파트너가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너무나 혹독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라는 석명이 연유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다.

 

젊은 시절 구로공단 근처 동네 벌집, 정확히는 벌방에서 산 적이 있었다. 벌집은 겉으로는 멀쩡한 양옥집인데 적게는 여남은 개에서 많게는 백 개도 넘는 한 평 미만짜리 벌방으로 쪼개놓고 공단 노동자나 도시빈민에게 세 놓는 가옥이다. 그 비좁은 공간에 둘 이상 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지방에서 상경한 젊은, 아니 어린 연인이었다. 혼자 힘으로는 월세를 감당할 수 없는데다 외로우니까 눈만 맞으면”, 그러니까 '속도위반'으로기민하게(!) 동거에 들어갔다. 연탄 둘 곳이 없어 창틀에 쌓아놓고 살망정 그들은 그야말로 벌처럼 굳세게 부지런히 살아갔다. 주말이면 가리봉오거리로 쏟아지듯 나와서 생존력을 드날리기라도 하듯 흘러 다니곤 했다. 노동자 사목을 지향하며 고뇌하던 내게 그 풍경은 아득한 불가사의였다.

 

196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10대 나이부터 시작해 벌집을 거쳐 간 40대에서 70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그들이 그 시절 삶을 어찌 기억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너무나 혹독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택한 공생가운데 상당수가 이 땅에 뿌리내려 생물권 행성 세계를 이루었음은 모름지기 알 수 있다.

 

지의류 본성을 숙고하고 있기에 나는 정색하고 돌아볼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사회는 그 시대와 그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권력을 빼앗기 위해 살육을 자행한 군인이 천수를 누리다 사죄도 없이 세상 버린 사건이 엊그제 일어난 이 나라는 지의류처럼 살아온 저 벌집 풀뿌리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일까. 혹 그 사람들의 속도위반과 정반대 속도위반을 하고 있는 사회는 아닐까. 지의류 공생 본성에서 지금 당장 우리가 기민하게 배우고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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