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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평점 :
인간 아닌 유기체 생명을 이해하려고 인간 개념을 적용하면 의인주의 함정에 빠진다. 반면에 '그것it'이라 하면 유기체를 사물로 전락시켜 또 다른 함정에 빠진다.
생물학 현실은 결코 흑과 백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말하는 데 언제나 입이 필요하지는 않으며, 듣는 데 언제나 귀가 필요하지는 않으며, 해석하는 데 언제나 신경계가 필요하지는 않으므로 우리 개념 중 일부를 변용할 수 있다. 편견과 조롱으로 인간 이외 생명 형태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84~85쪽)
백인이 노예로 만들려고 아프리카에서 끌고 간 흑인이 6천만 명이다. 우리나라 역시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제 민족을 노비로 부렸으니 남 얘기할 일 없다. 같은 인간조차 “사물” 취급하는데 하물며 다른 생명체임에랴. 인간만 이런 짓을 한다. 인간만 이성을 지니고 그 이성 덕분에 윤리와 도덕이 있다 하지만, 실은 그만큼 반이성적이어서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수렁에 빠지기 때문에 그런 장치를 자구책으로 애써 만들었을 따름이다. 자부가 수치를 증강하는 줄도 모르고 인간은 여전히 “함정에 빠진” 그대로다.
다른 생명체를 사물로 취급하는 일과 “의인주의”로 이해하는 일이 대칭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한걸음 물러나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인간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 의인법을 쓰는 행위 자체가 편의주의다.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도구적 선택 중 하나로 그저 “인간 개념을 적용”할 뿐이다. 인간 아닌 어떤 유기체 생명을 이타적이라고 표현하든 사악하다고 표현하든 인간 관지에 따른 편파일 수밖에 없다. 이는 그 생명을 사물로 취급해 기계적으로 표현하는 편파와 본질적으로 같다. 참 대칭은 인간 관지를 버리느냐 여부로 형성된다.
“말하는 데 언제나 입이 필요하지는 않으며, 듣는 데 언제나 귀가 필요하지는 않으며, 해석하는 데 언제나 신경계가 필요하지는 않으므로” 인간은 입, 귀, 그리고 뇌 개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동시에 입, 귀, 그리고 뇌 아닌 무엇으로 말하고 들으며 해석하는 생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말이 쉬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지만 딱히 좋은 방법은 없다. 그래서 “우리 개념 중 일부를 변용할 수 있다.”고 했다. 변용은 본디 번역에서 “확장”이었다. 그 말이 주는 의인주의 연장 느낌이 께름해서 변용으로 바꾸었다.
변용은 어떻게 하는가? 어차피 인간 언어는 자체로 은유다. 그 은유는 인간 신체와 그 움직임에서 발원한다. 인간 언어인 한, 이 한계를 불식하기 어렵다. 다른 유기체의 생명 활동이 생태계 전체 속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는지 판단해 “편견과 조롱으로 인간 이외 생명 형태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정밀히 스펙트럼 조절을 하면 흑백 함정에서 떠날 수 있다. 생명 스펙트럼은 그 실상을 인정하고 들어와 보면 놀랍도록 구체적이고 다양한 결을 지니므로 막연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섬세함만으로도 결곡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