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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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균사가 균사체 네트워크가 되는 데에는 두 가지 핵심적 변화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가지 치기, 두 번째는 문합anastomosis이다.(74)


 

우선 번역 문제부터 살피고 넘어간다. 번역자는 붙여 써서 가지치기로 했는데 이는 실수다. 붙여 쓴 가지치기는 cut off로 잘라낸다는 뜻이다. 띄어 쓰면 branch out으로 계속 다른 갈래가 생긴다는 뜻이다. 사전에서도 둘을 혼동하는 예가 있고, 아래아 한글에서는 띄어 쓰면 빨간 줄이 그어진다. 저자가 영어 단어로 무엇을 썼는지 궁금하다. anastomosis는 혈관이나 신경 관련 언어로 일반적인 융합으로 번역하면 포괄적이라 뜻이 모호해진다. 낯선 단어여서 번역자도 고민했겠지만, 문합吻合으로 고쳤다.

 

두 단어는 시각화하면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 가닥이 갈라져 두 가닥으로 나뉘는 모습이 가지 치기. 두 가닥이 만나 입술이 꼭 들어맞듯 한 가닥으로 모이는 모습이 문합이다.

 

두 단어는 상호모순이나, 아니 그러므로 어느 하나가 없으면 네트워크는 성립하지 않는다. 네트워크는 역설이다. 이 역설 진리를 1400년 전에 꿰뚫어보고 가장 적절히 표현해 탁월한 사상체계로 만든 파천황 스승이 바로 원효다. 가지 치기는 쟁이며, 문합은 화. 하여 화쟁사상이 성립되었다. 예측 불허, 규칙 불문으로 화쟁하는 균사 모습이 무애无㝵. 그렇게 이루어지는 네트워크 세계가 일심一心이다.

 

일심一心은 일통一統이 아니다. 화쟁사상 해석 대부분이 신라 삼한일통 이데올로기를 원효가 불교적으로 지원했다고 모독하지만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그 반대다. 우파 아류들 눈에는 화쟁에서 만 보이겠지만, 그런 무리에게 들이민 이야말로 원효가 의도한 역동적 맥락 강조다. 쟁을 세우고立諍 세운 쟁을 부수는 일破諍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화해和諧는 허울뿐이라는 진실 설파다. 이는 매판적 정복전쟁에 혈안이 된 당시 신라 지배층을 겨눈 통렬한 꾸짖음이었다. (김형효 원효의 대승철학주해리뷰(2010. 9. 19.)에 상세한 논의가 있다.)

 

곰팡이 균사체 네트워크 이야기에서 이런 사회정치적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일은 결코 견강부회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당위다. 인간으로서 곰팡이 이야기를 이리도 곡진히 하는 까닭은 그 생명 원리를 인간 사회정치 윤리에도 투영시키기기 위해서다. 원효가 맞닥뜨린 현실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 한, 이 이치를 떠날 수 없다.

 

저 옛날 원효 앞에 삼한일통 깃발 세우고 당나라 불러들여 제 곳간 불린 신라 매판족속이 있었듯, 오늘 우리 앞에도 여전히 일제에 나라 팔아먹고 부역해 제 곳간 불린 신라 매판족속 후손이 국가권력 한복판에서 날뛰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매판 지식인 전형인 윤기중의 아들 윤석열과 그를 대통령 만들겠다고 아우성치는 무리다. 저들은 네트워크를 파괴하는 반생명적 패거리다. 저들은 가지 치기와 문합으로 어우러지는 민주주의를 잘라버리는 폭도다. 곰팡이 생명 이치를 곰곰 생각하는 시민 사람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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