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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비밀 - 코로나19부터 유전자 치료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신비한 바이러스 이야기
다케무라 마사하루 지음, 위정훈 옮김, 강석기 감수 / 파피에(딱정벌레)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바이러스에 관한 상식이 21세기 들어설 무렵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계기가 된 사건은 2003년 ‘거대바이러스’ 발견이었습니다.
애초에 바이러스는 대단히 작은 개체인데 ‘거대’라니, 무슨 뜻일까요? 조사해보니 세균만큼 크고(12쪽).......진핵생물에 가깝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어쩌면 거대바이러스는 옛날에는 생물이었는데, 필요 없는 물질을 벗어버려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154쪽)
생물 진화는 반드시 구조가 복잡해지는 사건이 아닙니다. 간단해지는 일도 진화입니다. 말하자면 진화란 변화해가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퇴화라 불리는 사건도 사실은 진화의 하나입니다.......점점 작아지거나 단순해질 수도 있습니다.......원래 세포였던 생물이 쓸데없는 부분을 차츰 버리고 다른 생물 세포에 감염해서만 살아가는 형태가 되는 일도 진화입니다.(188쪽)
그 ‘원 생물’이야말로 제4도메인입니다. 세균과도 고세균과도 진핵생물과도 다른 그룹을 형성하던 생물이 진화해 지금 보이는 거대바이러스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154~155쪽)
온전한 지식 하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류와 전복이 되풀이되는지 돌아볼 줄 아는 인간은 겸손해진다. 지금도 그 과정 한가운데 있는 줄 아는 인간은 더 겸손해진다. 끝 날까지 그럴 줄 아는 인간은 더없이 겸손해진다.
일부 근본주의자 빼고 진화 지식은 기본에 해당한다. 기본이 잘못되면 그 위에 무엇을 쌓든 지식은 폐단으로 영락한다. 더군다나 진화를 진보로 번역하면서 인간이 저질러온 범죄 행위는 필설로 형언하기 어렵다. 더 진보를 더 우수로 인식할 때 인간 교만은 제 영혼마저 살해한다.
저자는 기본에 역습을 가한다. “퇴화라 불리는 사건도 사실은 진화의 하나”다. “원래 세포였던 생물이 쓸데없는 부분을 차츰 버리고 다른 생물 세포에 감염해서만 살아가는 형태가 되는 일도 진화”다. 기어이 “생물이 진화해.......바이러스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까지.
역습당한 진화: 퇴화, 생물: 무생물 이분법은 무너진다. 저자를 넘어 나는 계界도 가로지르고 도메인도 가로지른다. 존재는 스펙트럼이다. 통속한 도식 자외선, 보, 남, 파, 초, 노, 주, 빨, 적외선에 각각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 지의, 식물, 동물, 인간, 영, 문화를 짝짓는다.
경계선은 없다. 모호한 중간색들로 파동 연속이 형성된다. 끝과 끝은 비틀며 맞물린다. 뫼비우스 띠로 휘돈다. 클라인 병으로 드나든다. 존재는 실체가 아니라 과정이다. 과정 존재는 명사를 찰나로 지나갈 뿐 항상적 동사다. 움직임이 홀가분한 존재란 얼마나 멋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