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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과 공존하는 나는 통생명체다 - 내 안의 우주
김혜성 지음 / 파라사이언스 / 2019년 7월
평점 :
미생물(나는 이 말도 마음에 안 든다. 당신들 눈에 안 보이는 생물들을 미생물이라고 싸잡아 부르는 이 말은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하다)(30쪽)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이름을 놓고 많이 고민했다. 결국 “은”이란 외자 이름으로 결정했다. 한자漢字 표기는 없다. 부모 욕심 빼고, 아이 자신이 스스로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새 이름 지어가기를 바라 뒷문 열어놓은 조사助詞로 이름에 갈음했다. 아이 이름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왜, 금이 아니고 은이에요?”
이름 짓는 행위가 언어 존재에게 필연적인 만큼 어떻게 짓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새로 태어날/난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부모는 온갖 의미를 담는다. 어디 사람뿐인가. 사람이 지은 정자, 사람이 차린 가게, 사람이 만든 인형에게까지 정성을 다한다. 딱 여기까지다.
인간 언저리를 떠나 동물, 식물, 식물 이전 생명체인 지의류, 마침내 박테리아, 심지어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명명은 점차 무지와 독선으로 채워진다. ‘대충’에서 ‘아무렇게나’로, ‘아무렇게나’에서 ‘혐오를 담아’로 강화된다. 그래서 박테리아는 막대기라는 뜻이고, 기어이 바이러스는 독毒이라는 뜻이다. 독이라는 뜻을 지닌 바이러스는 오직 독으로서 “겁나” 중요할 따름이다. 코로나19가 그 정점을 찍고 있다.
인간이 “미생물이라고 싸잡아 부르는” 마이크로바이온트microbiont는 인간과 더불어 하나인 홀로바이온트holobiont, 내 표현으로는 네트워킹바이온트networkingbiont 또는 페더럴바이온트federalbiont의 당당한 주체다. 강용원이라 불리는 홀로바이온트는 90% 마이크로바이온트 10% 휴먼바이온트humanbiont의 네트워킹 또는 연방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는 시시한 존재가 아니라 신성한 존재다. 작은 생명은 하찮은 나부랭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이 진실에 터하면 인간은 야훼든 알라든 인간 관지에서 붙인 신명 앞에 무릎 꿇어서는 안 된다. 그런 신관은 마치 소아마비를 요괴가 가져다주는 병이라 믿은 몽매와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참된 신은 박테리아며 바이러스다. 막대기란 오명을 벗겨드려야 한다. 독이란 누명을 벗겨드려야 한다. 끝내 “쌩 까면” 막대기로 두들겨 맞아, 독이 퍼져 멸종할 일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