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거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풍요한 사회원조인) 수렵·채취인을 묘사한 글에서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는 이렇게 환기시킨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아무리 풍요롭더라도 희소성 법칙에 집착한다. 경제적 수단 부족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따르는 제일원리다.” 부족은 물질적 부가 실제로 얼마나 있느냐가 아니라 이 부가 어떻게 교환되고 순환되느냐에 달렸다. 시장체제는 부의 원천과 소비자 사이 흐름을 차단함으로써 인위적으로 희소성을 만들어낸다. 쌀이 창고에서 썩어나가는 동안 굶주린 사람들은 쌀값이 없어 죽어간다.......

  대안은 뭘까?......물과 땅, 숲처럼 우리 안녕에 기본적인 자원을 상품화하지 않고 공동으로 향수하는 공공자원 경제........ 공공자원 접근법은 올바르게 관리한다면 희소성이 아니라 풍요를 유지한다.(550)

 

우연히 알게 된 거물급 변호사와 술 한 잔하다가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는 특정 정권 정책 능력과 무관하게 강남 건물 부자 몇 사람이 좌지우지한다는 말을 들었다. 절친한 대학동기한테서 들은 얘기에 따르면 빌딩만 400개를 가진 어떤 부자아마도 앞에 그 몇 사람 중 하나가 재산 대부분을 사회 환원하려고 절차를 밟는 도중 술병으로 급사해 물거품이 되었다고 한다. 도표로 제시된 어떤 자료를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집을 가진 어떤 사람은 5천 개가 넘는 등기권리증을 가지고 있다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까닭은 얼마 뒤 이사를 가야 하는데 필요한 임대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해 걱정하는 와중이어서다.

 

우리나라는 주택 공급과잉 상태임에도 내게는 집이 없다. 희소성의 법칙은 원리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체제가 조작한 인위적 개념이다. 조작의 본영은 화폐이자를 전제한. 화폐가 부족정확히는 결핍의식과 시장 왜곡의 양성되먹임을 항구화한다. 화폐를 폐기하면 이 광란 질주가 멈출까? 그럴 수 있을까? 가능한 현실 대안은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말하는 공동체 향수자원 기반 화폐체제다. 이 체제는 모든 것에 재산(소유) 개념 적용하기를 멈춘다. 공유도 소유니, 공유는 물론 향유享有조차 조심스럽다. 결국 공동체 전체가 향수享受하는 자원 이야기를 한다. 공동체 향수가 인간을 결핍의식에서 해방해 풍요를 준다는 담론을 물질화한다. 이 물질화 성패야말로 인류 생사를 가른다. 여기가 로도스다.

 

나는 집 소유를 소망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임대보증금과 임대료에 끌려 다니며 끊임없이 떠도는 이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따름이다. 자기 소유 집을 타인에게 임대함만으로 끊임없는 소득이 산출되는 세상을 전복시킬 힘은 없으니 그저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버느라 허리 휘는 삶에서나마 놓여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정도 소망도 아직은 아득한 세상에서 공공자원 접근법을 입에 담는 일은 아무래도 물색없으나, 돌이켜보면 참 인문정신에 눈 번쩍 뜨인 순간 이래 나는 늘 그 물색없는 짓으로 일관하며 살아왔다. /풀 공부는 미상불 그 물색없는 짓의 끝판 왕이지 싶다. 공공자원 접근법 또한 낭/풀 본성에서 비롯한 지혜일 테니 물색없음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다. 내가 꿈꾸는 세상을 내가 몸담은 세상에서 맞을 수 있기를 어찌 바라랴. 그러나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춤춘다. 여기가 내 장미 꽃밭이다.”

 

* 마지막 두 문장은 김선우 <혁명력의 시간, 로도스의 나날>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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