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사유재산 강박 때문에 외로운 곳으로 추방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삶을 돈 버는 데, 일시적인 위안은 되지만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하는 물건을 더 많이 사들이는 데 쓰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한테조차 추방당하는 일까지 달게 받아들이지 않았는가.......우리를 속여 소유가 우리 허기를 채워준다고 믿도록. 우리가 정작 갈망하는 바는 소속인데.(450)


 

이명박·박근혜, 특히 박근혜 파면 이후 우리사회 전경에 대놓고 함부로 등장한 매판세력의 진면목을 연일 목도하는 중, 진부하나 다시 새삼스럽게 깨닫고 또 분노하는 바, 사법연수원 패거리와 신문방송사 패거리, 그리고 자유당( 이후 이름 바꾼 모든 수구정당은 물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이는 정당에 몸담기는 하나 하는 짓이 다르지 않은) 패거리가 사람 잡도리하는 광경은 참 참람해서 참담하다. 이 패거리는 소유본성을 지니고 소속허울을 뒤집어쓴 윈디고먹을수록 허기가 증강되는 아니시나베 부족 전설 속 괴물집단이다. 이 윈디고 집단은 돈은 물론 자기 영혼까지 금고에 넣었다. 이를 일러 자신한테조차 추방당하는 일이라 한다.

 

영혼까지 금고에 넣은 패거리에게 결박당한 채, 살아 있으나 사실상 죽은 삶을 영위하는 나는 그럼 뭔가. 나는 사유재산 강박에서 자유로운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삶을 돈 버는 데, 일시적인 위안은 되지만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하는 물건을 더 많이 사들이는 데 쓰면서되도 않게 아등바등하고 있지 않은가. 내 영혼은 안녕한가.

 

현실에서는 소유가 우리 허기를 채워준다고 믿지 않아도 영혼은 안녕하지 못하다. 나는 한평생 내 이름으로 등기된 집을 소유해본 적이 없다. 임대료 내기 위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삶을 돈 버는 데써왔다. 임대료 내고 사는 동안은 내 집이라 여겨봐도 위안은 되지만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하는진실이야 어쩌겠나. 66년 동안 33번 이사 다녔으면서 정작 갈망하는 바는 소속이라고 말할 주제가 되겠나.

 

주제넘게라도 소속을 갈망한다 치자. 내가 소속할 곳은 어디인가, 아니, 무엇인가? 답은 분명하다. 공동체, 참다운 공동체, 생명공동체다. 대한민국은 공동체인가? 무슨 그런....... 코로나 때문에 임대료 못 내, 거의 바닥나도록 보증금에서 제해나가는 동안, 임대료 일부나마 내려주겠다 말 한마디 않는 건물주, 그와 같은 임대업자들이 주류로 득세하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공동체라 하겠는가. 국가사회로서 대한민국은 약자들한테 실다운 공동체이기에는 매판 지배력이 언제나위축된 적이 잠깐씩 있었지만 무시할 정도였으니너무나 광범위하고 강고하다. 새삼스럽게 몸서리쳐지는 오늘 여기서 나는 뭐여야 하는가. 대체 뭐일 수는 있는가.

 

자타공인 나는 소심한 소시민이다. 국가 큰 담론을 꿰뚫고 있다고 해서 그 지식만큼 몸으로 할 일이 있지는 않다. 공동체 너른 지향을 한 아름 안고 있다고 해서 그 지혜만큼 몸으로 할 일이 있지는 않다. 몸이 사회적으로 매겨지는 가격대로 할 일이 있을 뿐이다. 내 가격이 하도 헐해서 내 언어의 중력이지 못할 때, 나는 침묵하고 나무에게로 간다.

 

침묵하는 일도 나무에게로 가는 일도 은둔 치고는 급진적·근원적이다. 더는 은둔할 데가 없는 막다른 곳, 그러니까 본진 깊숙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탈-정치와 몰-역사를 상징하는 토템폴이 아니라 사회혁명의 원형이며 원천인 민주공동체다. 민주공동체인 나무는 평등한 분산 주체 모두를 창발 네트워킹에 소속시키므로 사적 소유는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소유의 거점을 지우는 나무혁명을 향해 나는 조금 일찍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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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5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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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6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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