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숲에서 배운 바 또 하나, 무작위 따위는 없다는 사실이다. 삼라만상이 온갖 의미로 충만하며, 온갖 관계로 다채롭다.(436~437)



무작위의 사전적인 뜻은 조작하거나 통제하지 않음을 뜻한다. 여기 문맥에서 그냥 이렇게 새기면 뒤 문장과 관련해 볼 때 여간 어색하지가 않다. 작위, 그러니까 조작과 통제가 의미와 관계를 낳는다는 식으로 읽히기 십상이다.

 

본디 무작위는 사건을 동등한 확률로 발생시키기 위한 객관적, 과학적 행위다. 객관적, 과학적 행위에서는 충만한 의미와 다채로운 관계가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같은 말이지만 어감이 반대인 닥치는 대로로 새기면 어떤가? 아연 흐름이 달라진다. 이 경우 무작위는 함부로”, “아무런 지향 없이”, 심지어 익명으로라는 의미까지 결을 구성할 수 있다. 이 의미군은 뒤 문장과 무리 없는 상응을 이끈다.

 

사실 이런 언어사회적 논의는 다분한 인간중심주의다. 가령 이런 문장을 보자.

 

어린나무의 빛 부족 현상은 우연히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빛이 부족해야 어린나무가 똑바로 자랄 수 있다.”(페터 볼레벤,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더숲, 2019))

 

여기 우연이라는 말을 우리 본문 무작위 자리에 넣으면 어찌될까? 인간 관지가 빠지면서 의미로 가득차고 관계로 다채롭다는 말과 도리어 잘 어울린다. 빛이 부족해야 어린나무가 똑바로 자라는 일, 이 얼마나 충만한 의미인가. 어미나무와 함께 살아감으로써 일어나는 빛 부족 현상, 이 얼마나 다채로운 관계인가. 이 어찌 우연히 벌어지는 일이겠는가. 우연히 벌어지는 일이 아닐 때 온갖 접속은 관계다. 우연히 벌어지는 일이 아닐 때 온갖 변화는 의미다.

 

인간사회는 어떤가? 무의미한 변화, 무관계인 접속이 난무한다. 우연 때문인가? “닥치는 대로” “함부로” “아무런 지향 없이”, 심지어 익명으로접속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우연, 아니 무작위는 병리적이다. 그 병리가 언어사회학을 구성한다. 병든 언어를 쓰는 인간사회가 치유 받을 곳은 숲이다.

 

숲에서 병적 무작위가 지닌 독을 빼내면 우연에 이른다. 우연에 이르면 숲에는 우연 따위가 없다는 진실로 건너간다. 우연히 벌어지는 일이 없다면 죄다 필연인가? 이 또한 인간중심주의다. 우연 아닌 세계는 필연 세계가 아니라 우연과 필연 이분법이 사라진 세계다.

 

우연과 필연 이분법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온갖 접속이 관계고 관계는 자체로 의미다. 우연과 필연 이분법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온갖 변화가 의미고 의미는 자체로 관계다. 우연과 필연 이분법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의미와 관계 이분법도 사라진다. 우연과 필연 이분법이 사라진 세계에서라면 우연도 무작위도 숲 본성에 포용된다. 숲에서 배우면 언제 어디서나 이렇게 충만하고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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