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물어볼 일 있어도 우리는 같은 언어를 구사하지 않기에 직접 묻지 못하고 그들도 말로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리적 반응과 행동은 유창할 수 있다. 식물은 살아가는 방식으로,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질문에 대답한다. 우리는 어떻게 물을지 배우기만 하면 된다.(235)


 

제법 오래 전에 우울증 치료를 받은 분이 최근 다시 찾아와 숙의치료를 하고 있다. 물론 다른 문제가 있어서다. 여러 번 망설였다며, 두 번째 날 놀라운 얘기를 꺼낸다.

 

얼마 전에 죽을 만큼 아프고 힘들어서 40여 일 동안 대상도 없이 기도하다가 어느 날인가는 7시간이나 엎드려 있었는데, 한 순간 어떤 존재가 자기 몸속으로 들어오더란다. 놀라긴 했지만 나쁜 느낌이 들지 않아서 몸을 맡겼더니 알 수 없는 몸동작이 시작되더란다. 몸과 마음이 서서히 평안을 찾아가기 시작하자 아무런 의심도 들지 않더란다.

 

뭔가 하지 않은 내밀한 얘기가 있는 눈치긴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가지 중요한 해석을 해주고 그 영을 대하는 자세와 필요한 대화를 일러주어 보냈다.

 

내가 일러준 대로 누구냐고 물으니 당신이 요가 책에서 본 바로 그 요기인데 하도 간절히 기도해서 치료하러 오지 않을 수 없었노라 하더란다. 영들끼리 회의를 했다는 말도 하더란다. 그렇게 하기를 몇 주, 마지막으로 폐부 깊숙이 들어 있던 슬픔을 걷어냈다며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가더란다. 다시 오느냐 물으니 아니라고 대답하더란다.

 

그가 내게 얘기를 꺼낸 이유는 경험을 공유하고 해석해줄 사람이 나 말곤 없어서였다. 사려 깊은 치유 스승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그 영도 찾아오지 않았겠나. 나는 상세히 기억하고 간직해서 차후 다른 삶을 사는 기틀 삼도록 당부했다. 현재 느끼는 평안에 감사하는 만큼 공동체 네트워킹으로서 영이 지닌 책임을 거듭 얘기했다.

 

그의 질문에 응답한 영의 인간 본성은 그가 지닌 인식 범주, 인지방식과 맞물려 있다. 내 질문은 인간 본성을 넘어서 가며, 인간 인식 범주, 인지방식 경계 밖으로 간다.

 

내 질문은 낭/풀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하는 대답과 조응한다. 몸 움직임으로 질문한다. 크리스틴 콜드웰이 말한 대로 행위 없는 성찰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기”(바디풀니스280) 때문이다. 나는 무엇보다 먼저 말에 눌려 접힌 몸을 구석구석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 그 다음, 몸을 한껏 편다. 질문의 필요조건이다.

 

지난 9일 동안 말하기를 멈추고 내가 최초로 맞닥뜨린 진실은 걷는 인간으로 자부해온 내 걷기에 똬리 튼 몸 접힘이었다. 걷기를 접힌 몸으로 했다면 뭔들 펴진 몸으로 했겠나.

 

통렬하다. 나 또한 몸을 도구화한 인간의 전형에 지나지 않는구나. 상담으로 하는 마음치유를 업으로 삼고 있으니 오죽하랴. 내 치우침이 낭/풀을 불렀고, /풀은 몸을 건넸다.

 

몸으로, 움직임으로 회귀하는, 그러니까 몸 환원주의로 가는 과정이 아니다. 몸이 몸임을 인정하고 몸 움직임 실재를 삶과 치유 주체로 받아들임으로써 생명의 전체성을 확충하는 도정이다. 바로 이 길이 낭/풀의 길이다. /풀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중첩극상 세계를 구사하는 지식·지혜 형상. 지식·지혜 형상는 인간처럼 심신분리를 일으키지 않는다.

 

심신분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때 비로소 접힌 몸이 보인다. 접힌 몸을 펼 때 비로소 무엇을 어떻게 왜 질문해야 할지 알게 된다. 질문은 답변을 머금고 있다.

 

펴진 몸으로 낭/풀 생명 이치에 깃드는 순간부터, 질문과 답변, 질문자와 답변자의 이분법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풀 본성이 네트워킹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킹은 상호주체면서 상호객체고, 나아가 그 교차다. 이런 생명 교류는 신비를 공유한다. 신비를 공유하면 신비주의에 기대지 않는다. 신비주의 아닌 신비가 실컷 펼쳐지는 세상을 묻는 질문은 그대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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