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옥수수, , 호박 세 가지 식물은 사람을 먹이고 땅을 먹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침으로써 우리 상상력을 먹인다.

  수 천 년 동안 멕시코에서 몬태나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땅에 이랑을 만들고 이 세 가지 씨앗을 한자리에 심었다.......

  토박이들은 이런 파종법을 세 자매라고 부른다.......세 자매는 키가 다른 덕에 해가 준 선물인 빛을 남김없이 알차게 쓴다.......세 자매 밭은 셋을 따로따로 심을 때보다 더 많은 소출을 낸다.(192~196)

 

  세 자매 재주는 생장과정에만 있지 않다. 식탁에서 세 종이 서로 보완하는 데도 있다. 세 자매는 맛이 잘 어울리며 각각 사람에게 필요한 세 가지 영양소를 지니고 있다.......이번에도 세 자매는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가 더 낫다.(204~205)

 

 

  세 자매가 의도적으로 협력한다는 상상은 그럴 법하다. 정말 그럴지 누가 알랴. 그러나 협력 묘미는 각 식물이 자기 생장을 증진하려고 이렇게 한다는 사실이다. 개체가 번성하면 전체도 번성한다.(199)

  

  살아오면서 만난 지혜로운 스승을 통틀어 세 자매가 가장 유창하다. 그들 잎과 넝쿨은 관계 지식을 말없이 몸으로 보여준다. 혼자 있으면 콩은 넝쿨일 뿐이요 호박은 넙데데한 잎일 따름이다. 옥수수와 함께 서 있을 때에만 개체를 초월한 전체가 생겨난다. 각각 선물을 따로 아닌 함께 준비할 경우 더 온전히 표현된다. 익은 이삭과 부푼 열매에서 세 자매는 모든 선물이 관계 속에서 증식한다고 조언한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207~208)


 

세 자매가 함께 자라가는 풍경을 그리기만 해도 가슴 다습다. 세 자매가 어우러진 음식을 떠올리기만 해도 입속에 침 고인다. 세 자매 네트워킹이 일으키는 동반상승과 뜻밖 창발을 상상만 해도 소름 돋는다. 읽을수록 수긍·공감이 증식하므로 당최 췌사를 붙이기 민망하지만 내 이야기 몇 마디 엮어 주절거린다.

 

강원도 오대산 산골마을에서 보낸 내 유년기 기억 속 옥수수, , 호박은 북미대륙 토박이 지혜 속 세 자매와 사뭇 다르다. 옥수수, , 호박은 중남미에서 태어나 까마득히 오래 전에 가까운 북미로 건너왔다. 거기서 세 자매 농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들 영양 네트워킹은 식탁을 접수했다. 우리 경우, 장구한세월 동안 쌀이 옥수수와 같은 지위에 있었다. 나중에 옥수수가 들어왔지만 쌀에 필적할 만한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 자생 콩은 저 세 자매 속 가족과 달리 옥수수 대궁 같은 지주가 필요하지 않았다. 중남미 콩이 들어왔어도 그들 자리는 또한 옥수수 곁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한 호박 이야기는 아는 바가 거의 전혀 없을 정도다. 이 정도로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나만 지닌 호박 이야기로 세 자매를 구성할 수 있다.

 

기억이 비교적 생생할 나이 때 나를 사로잡은 식물은 호박이었다. 청명한 날 이른 오후 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 쫙 편 어른 손바닥보다 훨씬 더 큰 잎사귀 사이로 연두에서 진초록까지 다양한 결을 지닌 동그마한 호박이 언뜻언뜻 몸을 내보이면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그 모습을 훔쳐보았다(!). 봐선 안 될 것을 보기라도 하듯 조심조심 잎사귀를 살짝 들치고 햇빛 받아 반짝이는 생명체를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때 무슨 생각 따위를 한 기억은 없다. 매혹당한 채 그저 무념무상이었으리라.

 

내 마음을 사로잡는 크기는 대략 정해져 있었다. 작은 능금보다 작거나 큰 배보다 크면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유년기 내 생명체와 일치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무렵 이미 어머니한테서 받은 상처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적 부재. 게다가 할머니마저 먼저 서울로 올라가셔서 사실상 홀로 남겨진 상태였다. 노년기로 들어선 지금도 그 크기 호박은 설마 먹으랴 하는 표정으로 애틋하게 눈길을 끈다.

 

호박은 다양한 방식으로 식탁 위에 오르지만 가장 뚜렷한 인상으로 남은 기억이 있다. 제법 컸지만 속이 부드러울 때 통째로 삶아 반으로 가른 뒤 속 부분을 제자리에서 긁고 버무려 양념과 비벼 먹는 것이다. 양념은 대부분 장류였다. 호박과 토종 콩이 만나는 때다. 호박이 옥수수를 만나려면 계절을 기다려야 한다. 다 익은 호박을 도장방에 보관해두었다가 겨울 깊어진 어느 날 죽을 끓여 먹는다. 이때 옥수수와 만난다. 그리고 다시 콩을 만나는데 이번에는 강낭콩이다. 세 자매가 어울린 죽 한 대접을 기억하면 나는 아득한 그리움 속으로 순간이동 한다. 오롯이 기억나는 향에 비해 맛은 유년기 내게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던 듯하다. 등잔불빛에 의지한 두런두런 달그락달그락 풍경이야말로 절대 매력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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