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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감사 문화는 호혜 문화이기도 하다. 각자―인간이든 아니든―호혜 관계로 엮여 있다. 모든 존재가 내게 책임 있듯, 나도 그들에게 책임 있다. 누군가 목숨 바쳐 나를 먹이면 나는 보답으로 그 생명을 떠받쳐야 한다.(175쪽)
‘떠받치다’는 말은 이 문맥에서 말뜻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생명을 떠받치다니. 무슨 단어를 번역했을까. ‘떠받들다’가 조금이나마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되작거리다가 문득 저자가 쓴 다른 책 한 부분을 떠올렸다.
“우리 생각을 책임으로 바꿔야 한다. 호혜 망에서 우리는 어떤 재능과 책임으로 식물에게 보답할 수 있을까?
옛 스승들은 인간 역할이 존중과 보호라고 말한다. 우리 책임은 생명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식물과 땅을 돌보는 일이다. 식물을 사용하는 일이 식물 본성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배웠으므로, 우리는 식물이 계속 자기 재능을 선사하도록 그를 사용해야 한다.”(『이끼와 함께』 186쪽)
‘떠받치다’는 말을 놓고 더는 되작거릴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홀가분하게 다음 화제로 넘어간다. 호혜는 어떻게 이뤄질까?
저자는 선물과 책임을 “동전의 양면”이라 했는데, 나는 조금 달리 정리한다. 선물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선물 순환이라는 커다란 맥락에서 보면 동일하다. 주는 사람이 받고, 받는 사람이 주기 때문이다. 선물을 매개로 한 삶은 감사와 책임을 더불어 느낀다. 감사와 책임을 나란히 세우면, 감사는 책임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책임은 감사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감사를 이슥히 들여다보다가 허공으로 눈 돌리면 책임 잔상이 남고, 책임을 이슥히 들여다보다가 허공으로 눈 돌리면 감사 잔상이 남는다. 보색운동이다.
보색운동은 뫼비우스 띠를 타고 무한 순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