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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과학자들이 묻는 질문은 “당신은 누군가요?”가 아니라, “이건 뭐지?”다. 아무도 식물에게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나요?”라고 묻지 않았다. 주로 하는 질문은 “이건 원리가 뭘까?”였다.(070쪽)
돌고 돌아 내가 도착한 곳은 처음 출발한 곳, 아름다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것은 과학이 묻지 않은 물음이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앎의 방식으로서 과학은 너무 편협해 그런 물음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074~075쪽)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은 인간 존재의 한 측면이 아니라 존재 전체다.(078쪽)
중국 하남 숲에 신령한 오동나무가 살았다. 신선이 그 본성 소리에 이끌려 숲으로 와 그 나무로 칠현금을 만들었다. 칠현금을 손에 넣은 황제가 당대 악공을 불러 연주케 했으나, 모두 소음만 울릴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악공은 연주하기 전에 칠현금을 어루만지며 귀엣말을 했다. 잠시 뒤 다시없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황제가 무슨 얘기를 했느냐 물으니 악공이 대답했다. “스스로 지니고 있는 음으로 연주해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중국 옛 설화다. 통속한 악공들에게 결여된 바는 바로 겸허였다. “이름은 배웠습니다만, 그들 노래는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072쪽) 마찬가지다. 오늘날 통속한 과학자들은 오만한 어리석음으로 낭/풀을 사물로 환원하고, 사물이니 분석하면 안다고 환원하고, 분석만이 참 지식이라고 환원하는 삼중환원주의에 빠져 있다. 삼중환원 편협함은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을 감당할 수 없다.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은 예술뿐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다.
통속한 과학자와 통속한 과학을 신봉하는 일반인들이 꼭 똑 알아야 할 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과학적 법칙조차 수많은 인식 방법과 지식 체계가 참여해 재구성해온 결과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터한 과학도 인식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는 진실을 놓치면 오류에서 끝나지 않고 범죄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이미 인류는 과학이란 미명으로 천인공노할 범죄를 수없이 저질러왔다. 그 때 과학과 지금 과학은 다른가? 만일 그렇다면 100년 뒤에도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뒤에도 영원히. 낭/풀이 가리키는 달만 휘영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