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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선물은 진행형의 관계를 만들어낸다.......선물 경제에서는 누군가가 거저 준 선물이 다른 누군가에게 자본이 될 수 없다.......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그때마다 풍성해지는 선물이다.
선물의 본성이 그렇다. 선물은 이동하며 그때마다 가치가 커진다........정착민은 원주민에게 선물을 받으면 이를 귀하게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선물을 남에게 주면 선물 준 사람을 모욕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주민은 선물 가치를 호혜성에 두었으며, 선물이 돌고 돌아 자기에게 오지 않으면 모욕으로 느꼈다. 우리 옛 가르침 중 상당수는 무엇을 받든 반드시 다시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유재산경제 관지에서 선물이 ‘공짜’인 이유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무료로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물경제에서 선물은 공짜가 아니다. 선물 본성은 관계 창조다. 선물경제 바탕에 놓인 화폐는 호혜성이다. 서구 사고에서 사유는 권리지만, 선물경제에서 재산은 책임과 결부된다.(049~052쪽)
사유재산경제에서 대가를 치르고 상거래가 이루어질 때, 핵심은 대가를 표상하는 돈의 보편성이기 때문에 그 어떤 “관계 창조”도 일어나지 않는다. 돈이 관계 발생을 제거하는 조건이다. 거꾸로 말하면 돈이 개입되지 않는 선물 수수일 때, 보편성이 제거된 특수 사건을 당사자가 공유한다. 그러고 보면 관계란 마주한 당사자에게 어떤 고유 세계가 형성되는 운동이다. 선물은 세계 네트워킹에 참여하여 다양한 고유 결절을 맺으며 약동하는 모듈이다.
선물은 구체적 물질일지라도 그 바깥을 둘러싼 서사를 지닌다. 선물은 서사일지라도 그 행간에 내밀한 물질 실재를 지닌다. 이 비대칭인 대칭성에 힘입어 선물은 전해질 때마다 풍성해지고, 이동할 때마다 가치가 커진다. 이동하며 전해지지 않고 누군가 간직한 자본이 되는 순간 서사도 물질도 선물이기를 멈춘다. 선물이 멈추면 세계 네트워킹도 멈춘다. 네트워킹이기를 멈춘 세계는 자체가 착취다. 그 착취를 이름 하여 사유재산경제체제라고 한다.
우리나라 백만-우리 돈으로 11억 3000만원-장자 수가 105만 명이라고 한다. 상위 2%가량이다. 나와는 아득히 멀리 떨어진 이야기다. 그 아득한 거리에서 선물이 우주 근본 범주라느니 영속적 순환이라느니 떠드는 짓은 참으로 물색없다. 물색없기로 치면 낭/풀 이야기만 할까. 하필 선물이 낭/풀 본성에서 나왔으니 곱으로 물색없다. 곱으로 물색없는 얘기를 66살에 떠들고 있는 내 삶이야말로 물색없기 그지없다. 그지없이 물색없게 살아가련다. 물색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