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나무는 개체 아닌 집단으로 행동한다. 정확히 어떻게 그러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연대가 지니는 힘을 목격한다. 하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에게 일어난다. 굶어도 더불어 굶고, 먹어도 더불어 먹는다. 모든 번영은 상호적이다.(033쪽)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다.”라고 말했다.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삶을 사는 리베카 솔닛이 말했기 때문에 명명은 해방과 연속된 개념이다. 그 반대로, 예컨대 조선일보나 국민의 힘 당이나 검찰 인사가 말한다면 명명은 억압/수탈/살해/조작/왜곡과 연속된 개념이다. 대표적 명명이 “공정”이다. 공정이란 말을 매판극우가 강탈한 것만으로 우리사회는 촛불 이전으로 단연 퇴행했다.
퇴행을 좀 더 근원으로 밀어붙이는 명명이 요즘 준동하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네트워크”다. 매판극우 정치집단의 인맥, 아니 패거리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연예인 패거리를 처음에는 무슨 “라인”이니 뭐니 하더니 이제는 네트워크라고 표현한다. 네트워크 본성을 억압/수탈/살해/조작/왜곡한 명명 강도다. 이 강도행각은 머지않아 권력집단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우리사회는 본성을 빼앗긴 가짜 네트워크 사회로 타락하고, 그 가짜 네트워크에 끼지 못한 사람은 존엄을 억압/수탈/살해/조작/왜곡당한 채 비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그리 되었고, 최종적으로 확정 명명까지 하는 판국 아닐까?
저자가 “연대”라고 표현한 네트워크는 본디 나무에게서 발원했다. 나무는 본성이 네트워크다. 나무 네트워크는 패거리가 아니다. 나무들 사이에는 “보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등한, 그러니까 수평 쌍방향 소통으로 상호 번영을 이루는 민주적 시스템이다. 그 진면목은 아직 인간에게 미지 영역이다. 그저 이렇게 추정할 따름이다.
“연대 메커니즘은 공기 중에서가 아니라 땅속에서 전개되는 듯하다.”(040쪽)
땅속이라면 뿌리, 근균, 토양, 물, 공기들이 어우러진 생태계를 말한다. 이 땅속 생태계가 공유하는 정보와 에너지를 통해 분산된 자율주체들은 자발적·능동적으로 연대하고 집단으로 행동한다. 개체는 전체에게 매몰당하지 않으며, 전체는 개체에게 해체당하지 않는다. 개체 사이도 상호적이고 개체와 전체 사이도 상호적이다. 이렇게 미완성으로 영속하며 번영해간다.
인간이 배워야 할 집단행동은 나무 네트워크지 패거리 ‘네트워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