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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평점 :
나무는 역경과 화합한다.(109쪽)
번역서를 읽다보면 중요한, 심지어 결정적인 단어 뜻이 명석하게 포착되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원어 자체 문제도 있고, 번역자의 모국어 감수성 문제도 있다. 번역자가 이 문제를 알아차리고 원어를 병기해주면 좋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화합”은 프랑스어 무엇을 번역했을까?
‘화합하다’는 말은 ‘서로 뜻이 맞아 정답게 어울리다’는 뜻을 지닌다. 나무와 역경 사이에 이 말을 쓸 수 있을까? 나무라서가 아니라, 그 무엇이든 한 생명체가 역경과 서로 뜻이 맞아 정답게 어울리는 일이 가능한지를 묻는다.
나무 관지에서 쓴 말이 아니라는 혐의를 둔다. 인간의 관지에서 인간의 뉘앙스를 투사할 때, 이런 내 느낌은 어떤가? 화합이란 말을 듣는 순간 내게는 과거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독재를 일삼던 자가 내놓은 “국민화합”이 들이닥친다. 곧 이어 “국론통일”까지.
나는 내 화용론에 입각해 화합을 화쟁으로 번역한다. 화쟁은 원효에게 귀속되는 용어로서 우리사회 일반에게는 아주 낯선 용어다. 화쟁도 원효도 한글2010에 치면 빨간 줄이 그어진다. 내게는 물론 언어 목록inventory 맨 앞줄에 있다.
원효 화쟁은, 온전한 솔루션을 찾는 과정에서, 마주한 당사자가 주고받는 극상 상호작용이다. 역경이 누구든/무엇이든 나무는 그와 마주해 온전한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솔루션이 온전하려면 문제를 정확히 해야[諍] 한다. 諍 없이 전제된 솔루션[合]은 나무 본성과 맞지 않는다.
나무에게는 인간 군중처럼 국민화합, 국론통일에 부역하는 본성이 없다. 오직 화쟁으로 부단히 무애無㝵를 향할 뿐이다. 무애는 이데아가 아니다. 자재自在다. 무애는 순복이 아니다. 적응이다. 나무뿌리는 바위를 깨뜨리기도 한다.
나무는 역경과 화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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