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평점 :
나무는 한 장소에 억류되지 않은 채, 시간 속에서 미완성으로 영속한다.(83쪽)
불교계에서 살아 있는 부처生佛로 추앙하는 고승이 더러 있다. 매우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상징 정도라면 그렇기도 하겠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정색하고 부처 액면가를 매긴 정도라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본인과 주위 신자들이 어찌 믿든 그런 부처는 없다. 있다면 불상이다. 저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불교는 삿된 가르침이다.
삿되다고 얘기하는 근거는 둘이다. 생불이라는 자들의 사회적 언행을 보면 무엇을 깨쳤다는 겐지 도통 알 수 없을 만큼 엉성하다는 점이 하나다. 부처라는 완성을 전제하고 통속하게 누군가한테 헌정한다는 점이 다른 하나다. 전자는 한심하고 후자는 부박하다. 아니라고 하지만 불교 또한 공포불안과 탐욕, 그리고 어리석음을 볼모로 중생을 네오테니즘에 묶어두는 속임수다. 불성은 아이다움을 품어 안은 어른다움이다. 이 어른다움은 “한 장소에 억류되지 않은 채, 시간 속에서 미완성으로 영속한다.” 통속불교의 가르침은 거꾸로다. 충분히 삿되다.
삿되지 않은 불자와 불승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이 질문을 해보면 된다. “나는 부처를 사람 아닌 나무에게서 찾은 적이 있나?” 아니면 아니다. 부처는 한 장소에 억류되지 않은 채, 시간 속에서 미완성으로 영속하는 존재다. 부처는 나무다. 같은 말로 반복한다. 나무가 아니면 부처가 아니다. 나무 불자 본 적 있나? 나무 불승 본적 있나?
나무는 한 장소에 억류되지 않은 채. 시간 속에서 미완성으로 영속한다. 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