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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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나무를 몸통 하나로 착각하면서 식물계에 동물성을 투사해 동물중심주의로 넘어간다. 나무가 일원적이면서도 다원적인 삶의 방식 덕분에 분산하는 반면, 인간은 나무가 단일하고 응집된 총체 하나로 수렴한다고 생각한다.(81)

 

동물 인간 현실에서는 하나이자 여럿이거나, 또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나무 능력을 상상할 수 없다. 식물과 동물 사이 이러한 체계적 불일치는 인간 사유를 넘어선다. 인간은 나무에게서 몸통, 머리, 발, 심지어 눈까지 인식하더라도 육체는 결코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 모습에서 나무 모습을 찾고자 하는 욕망은 항상 강렬하다.

  발현하는 과정에서 하나 또는 여럿으로 양립함으로써 나무는 더욱 강해진다. 나무는 개체와 전체가 자기를 넘어서서 더불어 약동하며 세계에 몰입하기로 서로 동의한 뒤로는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반대로 인간 세계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조화롭게 공생하지 못한다.(82)

 

나무에게서 단일과 다원은 공존 개념이기 때문에, 나무가 다른 존재보다 우위에 서는 일은 없다.(81)

 

나와 남은 둘이 아니다自他不二처럼 다자와 일자는 둘이 아니다個全不二는 진부하다. 진부해서 거론하기 시시하다 하는 냉소보다 인간 현실에서 아득히 먼 진실이구나 하는 탄식 때문에 오늘도 나는 거론한다. “인간 세계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조화롭게 공생하지 못한다.

 

맞다. 인간은 일원적이면서도 다원적인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단일하고 응집된 총체 하나로 수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존재보다 우위에 서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인간은 공동체를 전시 목록에 넣어둬 본색을 가리는 무엇, 그러니까 조//동 문화면 정도로나 여길 뿐이다.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나 자신이 말할 수 없으므로 굳이 입을 연다.

 

다자가 일자고 일자가 다자다多卽一一卽多.특히 서구 주류는 대부분 다자도 일자도 허무에 떨어지는 결과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서구 주류가 지배하는 세상이니 결국은 세상 모두 속수무책이다. 실제로 엄존하는 일자는 돈이므로 허무아미타불이다. 돈을 숭배하면서도 무신론자로 속이는 다자는 클론인간이므로 허무무인지경이다. 허무를 깨고 실재 세계로 나아가는 길은 오직 나무에게 있다.

 

나무에게서 단일과 다원은 공존 개념이기 때문에, 나무가 다른 존재보다 우위에 서는 일은 없다.개체는 전체 생명 이치를 온전히 실행하므로 예속된 부품도 아니고, 상호간 차별도 없다. 전체는 모든 개체가 제각각 이름으로 참여하는 통짜 창발 네트워킹이므로, 개체 집합도 아니고 군림하는 초월신일 수도 없다. 이 비대칭인 대칭 운동으로만 개체주의 허무와 전체주의 허무를 한칼에 벤다.

 

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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