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무가 사회생활 모델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나무가 보여주는 대립 없는 공생, 즉 나무에게 매우 이로운 이 공생을 숙고해볼 필요는 있다. 나무가 발휘하는 이 협업 기능은 극에 달한 사회적 불평등과 과열 경쟁, 그리고 과대평가된 개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71)

 

나무가 지닌 깊은 진실과 경이를 생생하게 전해주던 중에 한 말 치고는 아쉬운바 적지 않다. “나무가 사회생활 모델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라는 말을 한 까닭이 뭘까? “세상에 헛된 주문을 걸어서는 안 된다”(101)고 한 말과 같은 맥락일까? 모델 대신 택한 숙고영감은 우리에게 어떤 실재로 다가올 수 있을까?

 

극에 달한 사회적 불평등과 과열 경쟁, 그리고 과대평가된 개인주의가 우리 시대정신이 된 까닭은 인간이 만든 정치제도 가운데 가장 우수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다. 근대 민주주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하는 헌법을 따르는 아메리카합중국이야말로 극에 달한 사회적 불평등과 과열 경쟁, 그리고 과대평가된 개인주의 끝판 왕이다. 아메리카합중국 헌법은 이로쿼이연방 정신을 벤치마킹했다. 물론 가장 본원적이고 핵심적인 정신은 뺀 채다. 그런 고의적 누락이 가져온 폐해는 광기에 해당하는 범죄였다. 그 가운데 가장 천인공노할 사항은 원주민에게 행해진 홀로코스트다. 유럽인이 처음 도착했을 당시 원주민 인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2천만에서 1억까지 추정한다. 그 중간을 잡더라도 6천만이다. 6천만이 1920년에 이르면 22만이 된다. 이 학살은 나치가 유태인에게 저지른 범죄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자신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준 스승을 살해로 보답한 정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극에 달한 사회적 불평등과 과열 경쟁, 그리고 과대평가된 개인주의가 판을 치지 않을 수 있겠나.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이로쿼이 정신 복원이다. 이로쿼이 정신은 나무에게서 왔으므로 당연히 나무 정신, 대립 없는 공생의 복원이다. 복원할 때, 숙고니 영감이니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단도직입으로 모델이라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종적 차이는 무의미하다. 인간 몸 자체는 모듈이 아니지만 신자유주의 삶은 완전한, 아니 네트워킹도 군집지성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극단적인 모듈이다. 인간에게서 모델을 찾으면 안 된다. 더군다나 지금 인간이 당면한 위기는 인간끼리만 주고받는 민주주의로는 감당할 수 없다. 종적 민주주의 실천이 화급한 과제다. 나무 협업이라는 모델이야말로 근원적radical이고 급진적radical인 모델이 아닐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