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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평점 :
예수와 나무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43쪽)
생애 시작은 말구유로, 일상은 목공으로, 마지막은 십자가로 예수는 그야말로 나무와 더불어 존재했다. 말구유와 십자가를 만든 나무가 한 나무의 다른 부분이었다는 신학적 주장을 무리하게 끌어들이지 않아도 “예수와 나무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 기독교인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생각해본 적이 있기는 할까? 예수나무 또는 나무예수를 생각하면서 신학, 교회, 문명을 이 지경으로 구성했을 리 없다고 전제할 때, 기독교 지성 판은 그다지 톺아볼 만하지 않을 게 뻔하다. 실망할 필요까지야 있으랴.
말구유 아래서 태어나 말구유 위에 뉘어진 아기 예수의 실재와 은유는 무엇인가? 십자가 아래서 골고다를 올라 십자가 위에 달린 청년 예수의 실재와 은유는 무엇인가? 허다한 신앙과 신학이 이 문제의 변죽만 울리고 지나쳐온 세월이 이천 년이다. 하물며 성서에 언급되지도 않은 목공 노동자 예수의 삶이야 말해 무엇 하랴.
예수 가르침의 종지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 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가 마른하늘의 날벼락으로 떨어진 것이 아닌 한, 나무와 무관할 수 없다. 예수가 한 문장으로 압축하기 이전 힐렐의 세 문장으로 풀어 놓으면 나무와 연관된 진실이 드러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내가 나만을 사랑한다면 나는 네게 무엇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 나무 본성에 나무 생애다. 그대로 예수 본성에 예수 생애다. 기독교인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조차 다시 정색하고 음미할 만한 진실 아니랴.
“예수와 나무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