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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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에 걸쳐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의 식물은 위대한 화학자를 음미했다. 시종일관 서로 갈마들며 내 의중을 사로잡았던 것은 세 가지 의문이다. 하나, 인간으로서 어찌 하면 낭·풀과 생동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 임상가로서 어찌 하면 낭·풀과 깊은 의학적 일치에 이를 수 있을까? ,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내가 낭·풀을 위해 뭘 해야 할까?

 

같은 인간끼리도 생동하는 관계를 맺기 쉽지 않은데 어떻게 낭·풀과? 얼핏 생각하면, 아니 과학적으로 생각할수록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얘기 같다. 그러나 인간은 겉(의식)과 속(무의식)이 분리되어 있(다고 굳게 믿)어서 어려운 것이다. 의식의 소유권을 포기하면 어린아이처럼 단도직입으로 낭·풀과 접속할 수 있는 것이 이치다. 나는 이 이치에 따를 것을 결곡하게 서약한다.

 

나는 이미 낭·풀을 약으로 써온 한의사다. 여태까지는 동아시아 전통 방식을 주축으로 하고 서구과학 방식을 참고했다. 여기에 내가 낭·풀과 맺을 생동하는 관계를 개입시키면 양상이 달라진다. ·풀 생명 이치가 처방의 구성과 서사를 재조정하게 함으로써 도구적 지위에서 벗어난다. 동등한 숙의로 의학적 일치를 창조한다. 나는 이 일치에 따를 것을 곡진하게 서약한다.

 

하루 하나씩 낭·풀을 멸종시키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내게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 물론 초국적 제약회사의 주구 노릇을 하는 양의사만큼은 아니지만 의료인으로서 더 통감해야 할 책임도 작지 않다. 월세 걱정해야 하는 변방 한의사 주제지만 최선을 다해 낭·풀이 일군 이 녹색생명세계를 보살피는 데 옹글게 일조해야 한다. 나는 이 일조에 신명 다할 것을 엄숙하게 서약한다.

 

서약이 내게 지우는 짐은 현실 삶에서, 의료 실천에서, 사회 참여에서 물적으로 변화가 드러나야 한다는 직접적 요구다; 시대정신을 거슬러 미친 삶으로 나아가라, 진욕進辱을 결행하라는 명령이다. 그래서 마지막 공부라 한 것이다. 내 생이, 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일는지 모르는 채, 네트워킹 생명운동에 운명을 내맡기고 건곤일척해보기로 한다. ·풀의 가피를 삼가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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