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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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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잘 알고 사랑하는 것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돌보게 된다. 그 것에 몰입하고, 그것을 위해 싸운다. 마찬가지로 식물과 관계 맺기를 재발견하면―치유라는 통로보다 더 본질적인 길이 어디 있겠는가?―식물왕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깨어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사랑하는 것의 보호자가 된다.(386~387쪽)
사랑은 식물적이고 소유는 동물적이다. 사랑은 타자를 위한 전사가 되는 일이고 소유는 자기를 위한 전사가 되는 일이다. 식물은 타자의 결핍을 떠안고 동물은 타자의 결핍에서 떠난다. 떠안는 것은 공존공생이고 떠나는 것은 각자도생이다.
우리는 다음 이야기를 알고 있다. 추운 설산을 지나던 한 사람이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본다. 자기만이라도 살기 위해 서둘러 길을 간다. 다른 한 사람이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본다. 자기만 살 수는 없어서 그를 업고 느릿느릿 길을 간다. 얼마 뒤, 홀로 가던 그 한 사람이 얼어 죽은 모습을 두 사람이 본다. 다른 사람을 업고 힘쓴 사람 몸에서 나는 열이 두 사람 모두를 살린 것이다.
문명 이후 인류는 인류만 번영하는 길에 탐닉해왔다. 돌이키지 않으면 인류마저 파멸시키고 말 것이다. 파멸의 위기 앞에선 인류가 재발견해야 할 것은 식물과 관계 맺기다. 정확히 말하면 식물 본성에 겸손하게 참여하기다. 겸손하게 참여해야 할 식물 본성이 바로 사랑이다. 오늘 여기의 사랑은 치유다.
“치유라는 통로보다 더 본질적인 길이 어디 있겠는가?”